고전 번역가

우리 역사상 가장 위대한 군주는 광개토대왕(廣開土大王)이다. 북방의 약소국인 고구려를 대륙의 강대국으로 변모시켜, 몽골 초원지대와 만주벌판을 내달렸고, 만리장성을 넘어 대륙의 요충지 북경까지 영토를 넓힌 정복 대왕이기 때문이다.

처음 고구려가 자리 잡은 지역은 환인분지로 만주 벌판에서 아주 먼 첩첩산중이었다. 나중에 상황이 나아져 압록강 쪽으로 천도하기도 했지만, 이전까지는 전체적으로 적의 침입에 대한 방어 위주의 국가였다. 도읍이 수차례 적에게 포위되었고 두 번이나 함락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고구려가 버틸 수 있었던 이유는 깊고 깊은 산악지형 덕분이었다. 압록강에서 고구려의 국내성까지 가려면 300km가 넘는 산길을 뚫고 와야 했다. 그러니 적들이 점령하기는 쉬워도 지키기는 어려운 지역이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광개토대왕이 즉위하고부터는 입장이 달랐다. 힘을 키워 대륙을 정복하고자 했다. 그런데 막상 대륙진출을 시도하려고 하자 지금까지 고구려를 지켜준 산악지형이 도리어 장애가 되었다. 국내성에서 육로를 통해 교통의 요충지인 의주까지 가려면 높고 험한 고갯길을 무수히 넘어야 했다. 그렇다고 중간에 기지를 삼을 만한 곳도 없었다. 나라 전체가 산악지대이기 때문이었다. 교통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대륙 정복이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이었다. 선대의 왕들이 여러 차례 의주를 전략기지로 삼았지만 이런 이유로 모두 실패했던 것이다.

광개토대왕은 과거의 실패 사례를 면면히 검토했다. 그리고 드디어 그 방법을 찾아냈다. 육로로 갈 수 없으면 수로로 가면 되는 것이었다. 국내성 앞을 흐르는 압록강을 이용하면 도착하는 하구가 바로 의주였다. 배를 이용해 군사를 이동하면 육로보다 시간과 비용과 체력을 크게 아낄 수 있었고, 보급품과 병력은 10배나 이동할 수 있었다. 간단한 이치였지만 아무나 할 수 없는 대단한 발상이었다.

물론 수로 이동은 배를 만들고 이를 다루는 특별한 기술이 요구됐다. 또한 육지는 적의 공격을 받으면 달아날 곳이 많지만 배는 몰살당할 위험이 컸다. 또 하나는 수군을 양성해야 하는 문제였다. 강대한 몽골이 남송을 점령하기까지 수십 년이 걸린 것도 수군이 약했기 때문이다. 산악지대의 병사를 수군으로 전환한다는 것은 큰 모험이었다. 하지만 광개토대왕은 이를 해냈다. 즉위 6년 만에 한강을 이용해 백제의 59개의 성과 700개 촌락을 점령할 정도로 막강한 수군을 양성했다. 이후 대륙으로 진출하여 우리 역사상 최대의 영토를 만들어냈다.

선동적자(善動敵者)란 적을 다루는 책략과 기술이 뛰어나 아군의 의도대로 적을 움직이게 하는 것이다. 즉 적을 잘 다룬다는 의미이다. 적을 잘 다루는 자가 형세를 갖추면 적은 반드시 따라오게 되어있다. 적에게 미끼를 던지면 적은 반드시 그것을 취하게 된다. 적을 이기는 형세는 바로 자유자재로 적을 다루는 것이다. 항상 안 된다고 생각하면 어느 것 하나 이루어지는 것이 없다. 하지만 발상을 전환하여 된다고 생각하면 반드시 이루기 마련이다. 이번 6월 13일 지방선거가 특별히 관심 있는 이유는 한 시대가 지나고 새로운 시대가 시작된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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