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문식 청주고인쇄박물관 운영사업과 주무관

1911년 8월 21일 프랑스 루브르박물관에 걸려 있던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그림인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모나리자’가 도난당하는 희대의 사건이 벌어진다. 범인은 빈센초 페루지아란 이탈리아 남자로, 훔친 모나리자를 2년간 집에 보관하고 있다 여론이 잠잠해진 틈에 이탈리아 피렌체의 한 골동품상에게 팔려 했다. 결국 덜미를 잡혀 경찰에 붙잡히고, 모나리자는 다 빈치의 고향인 이탈리아로 돌아오게 됐다.

당시 이탈리아 내에서는 페루지아를 도둑이 아닌 애국자로 취급하며 모나리자를 돌려주면 안 된다는 여론이 대두됐으며, 또한 나폴레옹의 약탈 문화재 문제로 갈등을 겪던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관계 때문에 프랑스로서는 이탈리아가 모나리자를 돌려주지 않을지 우려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런 우려와는 달리 이탈리아는 선뜻 모나리자를 프랑스에 다시 돌려주기로 했다. 모나리자는 다 빈치가 프랑스의 왕이었던 프랑수와 1세에게 팔았던 것으로, 합법적으로 프랑스의 소유였기 때문이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현존 세계 최고(最古)의 금속활자본 ‘직지’도 ‘모나리자’와 비슷한 사연을 가진 우리의 문화재이다. 직지는 초대 주한 프랑스 공사였던 콜랭 드 플랑시가 우리나라에 근무하면서 1900년 경 구입해 프랑스로 가지고 간 것으로, 현재는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보관 중이다. 간혹 직지가 병인양요 때 프랑스 군에 의해 약탈된 것으로 알고 있는 경우도 있지만 사실이 아니다.

합법적 구입이든 약탈이든 해외에 반출된 우리의 소중한 문화재를 온전히 돌려받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모습일 것이다. 마찬가지로 직지도 우리나라, 특히 청주로 돌아오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상황이고, 궁극적으로 우리가 추구해야 할 목표임은 명백하다. 하지만 프랑스 국립도서관의 직지 소유는 합법적이고 명확한 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반환을 비롯한 모든 과정에는 신중히 접근할 필요가 있다.

직지가 처음 국내에 소개됐을 때도 반환 운동이 일어났지만, 프랑스에서 직지를 외부에 공개하는 것을 차단하고 버티면서 점차 대중들의 관심에서 멀어져 갔고 반환 운동도 시들해졌다. 그간 청주에서 개최한 직지축제나 직지코리아 행사에 직지 원본을 전시하기 위한 대여 문제도 지속적으로 프랑스 국립도서관과 협의했지만, 직지가 한국에 전시될 경우 반환 운동이 촉발될 수 있다는 이유로 성사되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다시 반환을 요청하는 것은 그간 교류를 통해 신뢰관계를 쌓아온 프랑스 국립도서관과의 연결고리를 끊어버리는 것이다. 당장 직지의 임시 대여도 성사 여부를 장담할 수 없지만 그나마 그동안 실현 가능성이 있는 과제를 서로 협의하고 진행해 왔던 노력마저도 물거품이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프랑스 국립도서관과의 신뢰 구축이 우선이다. 동시에 이런 과정과 노력을 시민과 함께 공유함으로써 직지에 대한 시민의 관심도를 지속적으로 끌어올려야 하는 시기이다. 그래서 청주시에서는 직지 청주 전시를 위한 직지 바로 알기 30만 범시민 서명운동을 추진하고 있다.

물론 30만 청주시민의 염원을 담은 서명부를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전달한다고 해서 바로 직지 대여가 가능해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많은 시민들에게 직지가 처한 현실을 정확히 알리고 관심을 높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을 것이다. 나아가 만약 이를 통해 직지 대여가 정말로 성사된다면, 직지에 대한 시민의 관심도는 더욱 증폭되고 관련 정책의 추진에도 보다 탄력이 붙을 것이다.

우리의 문화재인 직지를 영구 반환이 아닌 임시로 대여하려는 노력에 대해 불충분하고 소극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직지의 대여는 그 자체만으로도 큰 의미를 담고 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우리 시민의 의사와 염원을 단순히 호소하는 것에서 앞으로 이뤄질지도 모를 합법적인 환수 가능성을 준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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