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그렇게 많은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기회가 왔을 때, 기회라고 생각되어질 때를 최대로 이용해야 한다.

“대주 생각이 그렇다면 우리 구레골에서도 한 번 생각해 보겠소이다!”

버들쟁이 구 씨도 최풍원이의 생각에 동조했다.

“지금까지 해오던 생업이야 당연히 해야겠지요. 그렇지만 근력이 없어 밭일을 할 수 없거나, 산에 가지 못하는 노인들은 집에서 대바구니를 엮을 수 있지 않겠소. 그리고 낮일하고 와서 잠도 못자고 밤늦도록 베틀에 앉아있는 아낙들도 베 짜는 대신 바구니를 만들면 어떻겠소?”

최풍원이 농번기에도 바구니를 짤 수 있는 방안을 내었다.

“노인들은 모르지만, 아낙들은 그게 힘들거요.”

“왜지요?”

“아낙들이 베를 짜지 않으면 여기 사람들은 벌거벗고 다니란 말이오?”

“버들쟁이 구 씨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구 형, 아까 그런 강포는 싸니 그런 걸 사서 입으면 될 것 아니오?”

“아무리 강포가 싸다한들 그걸 살 여력이 어디 있소! 낮에도 두더쥐처럼 땅만 파고, 밤에는 밤대로 잠을 설쳐가며 베를 짜도 여기 뜯기고 저기 뜯기고 나면 남는 것이 없는데 뭘루 옷까지 사입는단 말이오?”

“바구니를 팔아 돈을 만들면 될 것이 아니오. 구레골에서 만들어놓기만 하면 파는 것은 내가 책임지리다.”

최풍원이 자신있게 말했다.

“구레골에서 나는 다른 것들도 팔아줄 수 없소이까?”

두 사람의 이야기를 옆에서 잠자코 듣고 있던 촌로가 최풍원에게 부탁했다.

“구레골에서 나는 또 다른 산물들이 있소이까?”

“있다마다요!”

“뭐가 있소이까?”

“사시사철 월악산에서 나는 약초가 얼마나 많은데요. 오죽하면 진시황까지 불로초를 캐러 예까지 왔다 갔다고 하겠소이까?”

촌로가 갑자기 중국 진시황을 월악산으로 데리고 왔다. 약초 이야기만 나오면 조선팔도 방방곡곡 진시황 전설이 없는 곳이 없다.

“대국 땅도 갈 데가 숫한데 이런 구레골 고랑탱이까지 뭣 하러 온대유?”

촌로의 이야기가 못마땅하다는 듯 마을 젊은 축이 걸고넘어졌다.

“니들 것이 젊은 것들이 뭘 알겠느냐? 우리 영봉 기운을 받고 자란 약초 효과가 좋다고 중국까지 소문이 퍼졌으니 왔겠지. 저기 금수산에는 중국 주천자라나 뭐시라나 그 묘도 있다잖더냐? 월악산이 아버지라면 금수산은 아들뻘인데, 거기에는 오고 여기는 안 왔겠느냐?”

촌로는 젊은 축 하는 빈정거림에 비위가 상해 이 얘기 저 얘기를 끌어다 붙이면서까지 진시황 이야기를 관철시키려 했다.

“아부지구 아들이구 영봉이구 나발이구 구레골 약초 소문이 중국까지 났는데 사는 꼬라지가 맨날 이 모양이래유?”

젊은 축은 이런 산골에 처박혀 사는 것 자체가 불만덩어리였다. 할아버지 때도, 아버지 때도, 지금 자신까지 변한 것이라고는 조금도 없었다. 눈 뜨면 땅두더쥐처럼 나가 땅을 파고, 해가 지면 녹초가 된 몸을 이끌고 돌아와 쓰러져 잠들었다. 그것이 몇 대째 계속되고 있었다. 그렇게 부지런히 일하면 뭔가 나아지는 게 있어야 살맛도 나는 법이었다. 그래야 일말의 희망이라도 품고 살아갈 힘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런데 할아버지 때나 지금이나 살림살이를 견주어 봐도 도통 나아진 것은 없었다. 젊은 축으로서는 답답함을 느끼는 것이 당연했다.

“사는 게 다 그런 거지, 특별할 게 뭐가 있다더냐? 부자라고 하루 세 끼 먹지, 다섯 끼 먹는다 하더냐?”

젊은 축 마음을 들여다보려는 생각은 안중에도 없이 촌로는 자신의 이야기에만 골몰해 있었다.

“세 끼 전에 하루 한 끼라도 제대로 먹고 있는가요?”

“세상에 이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지, 어떻게 모두가 똑같을 수 있겠느냐? 욕심을 버려야 세상 살기가 편하지 되지도 않을 욕심 자꾸 부려봐야 살기만 더 팍팍하다.”

촌로가 젊은 축을 타이르듯 다독였다.

“실속도 없이 허황한 생각만 가지고 사는 게 난 싫습니다!”

깨진 쪽박만도 못한 생활을 하면서, 큰소리 한 번 쳐보지 못한 삶을 살면서도, 마을 이야기만 나오면 우리 마을이 세상에서 제일 살기 좋은 곳이고, 우리 마을에서 나는 산물이 가장 좋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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