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의 재판거래 의혹이 일파만파 확산되면서 사법부에 대한 신뢰가 점점 낮아지고 있다. 전국의 젊은 판사들을 중심으로 검찰 수사를 통한 철저한 진상규명과 관련자 처벌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법원에서 잇따르고 있다. 국민의 여론도 10명 가운데 6명꼴로 사법부 재판을 신뢰하지 않는다는 조사 결과가 4일 나왔다.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리얼미터가 CBS 의뢰로 지난 1일 성인 500명을 상대로 사법부의 판결 신뢰도를 조사한 결과(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4.4%포인트), ‘불신한다’는 응답이 63.9%로 나타났다. ‘신뢰한다’는 답변 비율은 27.6%였다. 국민에게 가장 신뢰를 받아야하는 사법부로서는 낯 뜨거운 일이다. 기왕에 불거진 일이니 이번 기회에 철저한 수사를 통해 사법부가 거듭나도록 해야 한다.

국민이 이렇게 사법부를 불신하는 데는 재벌기업이나 국회의원, 전직 검사 등 권력자에 대한 재판에서 솜방망이 판결이 양산되고 있는데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사법농단 의혹의 확산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재판거래 의혹으로 불거졌지만 국민의 신뢰저조는 오래된 사법부의 적폐라는 얘기다. 

서울중앙지법 단독 판사들은 4일 회의를 열어 이번 사태와 관련해 성역 없는 수사를 통한 진상규명을 요구했다. 서울가정법원 단독·배석 판사들과 인천지법, 제주지법 등도 단독판사회의를 열어 수사의뢰 등 엄정 대처를 촉구했다. 당연한 일이다. 자신들이 속한 조직이지만 조직의 일부가 썩었다면 당연히 환부를 도려내야 한다. 그대로 방치할 경우 조직 전체가 곪기 마련이다.

지법 부장판사 이상 직급의 중견·고참 법관들의 입장은 아직 나오지는 않았다. 하지만 전국 법원의 단독 및 배석 판사 등 젊은 법관들 사이에서는 의혹 관련자들에 대한 형사 조치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더욱 확산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사법부 구성원들은 누구나 이번 사태에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향후 수사와 그 결과에 따라 개시될 수 있는 재판에 관해 엄정한 중립을 유지해야 한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과 관련한 특별조사단의 조사 결과 드러난 미공개 파일 원문도 공개해야 한다. 신뢰할 수 있는 수사를 위해 필요한 일이다.

검찰의 수사가 완료된 뒤에는 반듯이 같은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실효적인 대책이 나와야 한다. 재발대책을 마련하지 않고 유야무야 넘어갈 경우 현재의 논란이 의미 없어진다. 특별조사단 조사결과 드러난 모든 의혹에 대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수사의뢰 등 법이 정하는 바에 따른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전국의 판사들이 대부분 같은 결론을 내고 있다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조직의 잘못을 외면하지 않고 수사를 촉구한다는 것은 조직에 커다란 흠집이 날 수 있다. 하지만 외면하고 그대로 넘어갈 경우 더 큰 흠집이 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전국 각 판사회의의 입장은 오는 11일에 열리는 전국법관대표회의로 집결될 것으로 보인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 최종 결론을 낼 예정이다. 김 대법원장의 대승적인 결단을 기대한다. 재판거래 의혹으로 이와 무관한 재판들까지 불신이 확산되고 있는 상황이다. 사법부 스스로 대책을 내놓고 자정해 나가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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