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승사자 만난 것 같았겠다. 그래 워떻게 됐어?”

“뭘 워떻게 돼. 지랄을 만났겠지.”

“이 년이 뭔 지랄을 하고 쏘다니느라 밭에 가도 없고, 해 넘어간 지가 언젠데 인제 끄대오냐며 길길이 뛰는 거여! 그걸 때는 저승사자보다 더 무셔!”

“서방질이라도 하다 걸렸으면 황천길 갈 뻔 했구먼!”

“샛밥도 아니고, 먹을 게 없어 노다지 굶는 과수가 서방질 좀 했기로서니 그게 죽을 죄여?”

“지랄들 하네! 시어머이 얘기하다 갑자기 웬 샛밥 얘기랴?”

“과부살이도 억울한데 시집살이까지 하니 니가 불쌍해서 그러지.”

“니년들이나 걱정해라!”

“하기야, 있는 년들도 굶은 지 오래다!”

“지랄들 그만하구, 국에 넣어 끓이게 어이 올갱이나 까! 그 지랄로 느적거리다가는 밤참도 늦겠다!”

복평댁이 펄펄 끓는 무쇠솥에서 삶은 올갱이를 조리로 건져내며 수다 떠는 아낙들에게 말했다.

“그래, 도끼눈 뜬 시어머이가  아무소리도 안 해?”

“그 지랄탱이가 푸닥거리를 빼먹을 리가 있겠어? 지랄지랄 떨었겠지!”

입으로는 두둔하는 척 하면서도 아낙들은 속으로 은근히 복평댁이 시어머니에게 어떻게 당했는지 궁금해 하는 눈치들이었다.

“눈을 치뜨고 입으로는 금방이라고 잡아먹을 듯 물어뜯더니, 구 씨 네서 저녁을 낸다고 했다면서 글루 빨리 가보라고 하데. 그래서 부리나케 일루 왔지.”

“발길질에 뺌 때리는 건 여사고, 수틀리면 달려들어 머리채를 뽑던 지랄을 우째 안 했을까나?”

“그러게. 복평댁 시어머이 지랄탱인 건 여기 동창 바닥에 떠르르한 데, 낼은 동창에서 해가 뜰라나…….”

아낙들이 비비꼬며 복평댁 염장을 질렀다.

“우리 시어머이가 내 뺌 때리는 거 본 년들 있냐? 오늘 잡은 이 올갱이도 가져가 끓여 동네사람들과 함께 먹자며 시어머이가 내주더라.”

자기는 식구들 욕을 해도, 남이 내 식구 욕을 하면 듣기 싫은 것이 인지상정이었다.

“복평댁 말 다 뻥이여!”

“욕심이 볼태기에 덕지덕지 붙은 암상이 그럴 리 없어!”

아낙들이 속닥거렸다.

“아갈바리 싹싹 문질러놓기 전에 지랄들 그만 떨어!”

복평댁이 시어미니 흉을 보는 아낙들 입을 틀어막았다. 밖은 이미 어둑해졌는데  늦은 저녁을 준비하느라 버들쟁이 구 씨 마당은 분주하기만 하다. 화덕에 걸어놓은 솥에서는 밥 냄새가 솔솔 풍기고, 그 옆에서는 복평댁이 잡아온 올갱이국이 설설 끓었다. 한 머리에서는 화덕에서 부삽으로 숯불을 담아다 생선을 구웠다. 생선 냄새가 사방으로 퍼졌다. 비릿한 냄새에 회가 동하는 사람도 있었고, 처음 맡아보는 냄새에 속이 뒤집혀 구역질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개들도 킁킁거리며 돌아다니고, 마을 아이들은 무슨 큰 구경거리라도 난 듯 덩달아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신이 났다. 구레골에서 이런 잔치가 벌어진 것도 서너 해는 족히 넘었을 것 같았다. 잔치는 아니었지만 몇 해 전 월악산으로 약초를 캐러 갔다가 영봉 근처 절벽에서 실족해 죽은 천길이 아버지 상을 치르느라 며칠 동안 마을이 법석했던 게 마지막이었었다. 논뙈기라도 좀 있는 산 아래 벌뜰에서는 그래도 가을이 되어 타작 때가 되며 마을사람들이 모두 모여 하루 종일 나락을 털며 큰 가마솥에 밥을 해서 함께 먹곤 했다. 그러나 논이 없는 구레골에서는 그렇게 사람들이 모여 타작할 만한 농사거리도 못 되었다.

버들쟁이 구 씨 마당에 구레골 사람들이 모두 모여 저녁을 먹게 된 것은 그로부터도 한참이나 시간이 흐른 뒤였다. 초저녁잠이 많은 늙은이들은 이미 한잠을 자고 일어났을 그런 시간이었다.

“오늘 저녁은 청풍 북진에서 온 최풍원 대주가 마을 어르신들께 내는 음식입니다. 맛있게들 드시며 최 대주 말을 들어보십시다!”

버들쟁이 구 씨가 최풍원을 마을사람들에게 소개했다.

“여러 어르신들! 저는 북진임방 최풍원이라 하외다. 이번에 우리 임방에서 주문한 바구니를 구레골 어르신들이 애써주셔서 그 보답으로 이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소찬이지만 맛있게 드시고 앞으로도 좋은 물건을 만들어주시기를 부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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