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가끔씩이라도 배가 터지게 밥이라도 한 번 푸지게 먹고 나면 눈이 번해진다는 것을, 그래서 졸아붙었던 희망을 다시 꿈꾸며 또 한 번 살아봐야겠다는 힘이 생긴다는 것을 배를 곯아본 사람은 잘 알고 있었다. 생각지도 못한 갑작스런 일에 버들쟁이 구 씨는 어쩔 줄 몰라 했다.

“구 형,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소이다. 마을 사람들을 힘들게 했으니, 어르신들 모시고 밥이나 한 끼 하겠다는 거요.”

“그래도 여기서는 이런 일이 처음인지라…….”

“제 올릴 음식도 아니고 격식 차릴 일 뭐 있소.”

구레리는 산중 깊은 골에 있는 궁벽한 마을이었다. 그래서 여느 마을처럼 사람들이 많지는 않았다. 아무리 그래도 느닷없이 마을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여 밥을 먹는다는 것이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갑자기 버들쟁이 구 씨 집이 부산해졌다. 최풍원의 명에 따라 동몽회원들도 바쁘게 움직였다. 쌀자루가 풀어지고 간절이 어물들이 채반에 풀어졌다. 동네아낙들도 월악산에서 지천으로 나는 산나물들을 가지고 구 씨 집 마당으로 모여들었다. 한쪽에서는 불을 지펴 밥을 하고, 한쪽에서는 나물을 무치고, 한쪽에서는 올갱이국 준비를 하느라 한 무더기 아낙들이 모여앉아 수다가 늘어졌다.

“복평댁은 약빠르기도 혀! 밭일도 바뻐 죽겠는데, 물에는 언제 또 가서 올갱이를 잡어왔데?”

“약빠르면 뭐해! 일은 독판 하고도 욕은 버래기로 얻어먹는누무걸!”

“왜?”

“왜긴! 복평댁 시어머이 승질을 몰러서 물어?”

“맞어! 오늘은 암맞두 안해?”

“해가 저쪽에서 뜰라나. 그 지랄탱이가 그럴 리 없지. 걸게 욕 바가지나 얻어먹었지?”

아낙 중 한 명이 마을 뒤편 공이동 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며칠 전부터 시루미 동네 앞 갱분이 자꾸 떠오르는 거여.”

야짓잖게 묻는 아낙에게 복평댁은 뜬금없이 숫갓 앞에 흐르는 냇물 이야기를 했다. 

“시루미 갱분은 왜?”

시루미는 동창에서 송계계곡을 따라 내려가다 다시 복평에서 냇물을 거슬러 올라가 성천과 광천이 만나는 지점에 있는 물가 마을이다. 구레골에서는 족히 시오리가 넘었다. 인근에서는 그곳을 시루미 숫갓이라 불렀다. 시루미는 맑은 물이야 당연한 것이고, 물고기가 많고 물이 얕아 천렵을 하기에 그만이었다. 무엇보다도 거기는 올갱이로 소문이 난 곳이다. 어디를 가나 물 좋은 이 인근에서 올갱이가 나지 않는 곳은 없었지만, 특별히 시루미 올갱이가 소문난 것은 맛이 월등 뛰어났기 때문이었다. 복평댁은 친정곳이 시루미 바로 아래였기에 어느 때 올갱이가 가장 맛있고, 어느 때 올갱이가 가장 굵고, 어디를 가면 올갱이가 많은지를 훤하게 알고 있었다.

“얼마 안 있으면 보름이잖여? 올갱이는 보름 때 젤루 살이 통통하게 오르거든. 그게 눈앞에 삼삼해서 잠이 와야지 말이지.”

“천성이여. 우린 암만 살아도 그런 거 잡을 생각이 나지도 않는구만.”

“맘 같아서는 밤중에라도 가고 싶었지만 시어머이 찢어진 눈이 무서워 며칠 전부터 언제 가보나 하고 궁리를 했지. 그러다 오늘 아침 상을 물리자마자 밭 매러 간다고 하고는 냅다 집을 나섰지.”

“그 길로 바로 간 거여?”

“그러다 들키면 시어머이한테 머리채 다 뽑힐라구. 일은 해놓고 가야지. 손이 안 보이게 호미질을 해서 밭을 다 매놓고 나니 점심나절 쯤 돼대. 그리고 시어머이가 눈치 채기 전에 얼른 다녀오려고 재똥재를 넘어 시루미로 쏜살같이 갔지.”

“그래 안 들켰어?”

“두어 참 구부리고 잡았더니 해도 기울고 으시 잡았더라구. 그때 서둘러 바로 집으로 왔어야했는데…….”

말로는 아쉬워하면서도 복평댁 표정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걸렸어?”

“글쎄 말여, 집에 오려고 주섬주섬 채비를 하는데 해가 지며 돌 밑에 숨어있던 올갱이들이 위로 새까맣게 올러오는 겨! 그걸 보고 어떻게 와. 돌에 붙은 올갱이를 쓸어 담듯 훑어 잡다보니 시간가는 줄도 몰랐지.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어둑어둑해진 다음이여. 지랄났다는 생각에 물이 줄줄 흐르는 올갱이 자루를 머리에 이고 무거운 줄도  모르고 부리나케 돌아오니 시어머이가 도끼눈을 해가지고 봉당에 서있는 거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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