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연구원 연구위원

최근 우리나라의 가장 큰 관심은 단연 남북 판문점회담에 이은 북미회담의 성공 여부이다. 남과 북, 그리고 미국과의 관계는 불과 며칠 사이에 천당과 지옥을 오가는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다. 지난 달 남북협상이 성공적으로 마쳤을 때만 해도 금방 통일이 될 것 같았다. 그러던 것이 북한과 미국 사이에서 갈등을 드러내면서 다시 꼬이는 듯 했으나 문재인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을 차례로 직접 만나면서 극적으로 풀리기 시작했다. 오랜 시간동안 풀리지 않았던 실타래가 풀리는 듯 하다.

갈등(葛藤)이란 칡(葛)과 등나무(藤)가 서로 얽혀 있듯이 사람 개인이나 집단 사이에서 서로 다른 의견, 행동, 신념, 목표 등으로 인해서 의견이 대립되거나 충돌해 부딪히는 상황을 표현하는 말이다. 칡은 오른쪽으로 덩굴을 감으며 올라가고, 등나무는 왼쪽으로 덩굴을 감으며 올라가기 때문에 칡과 등나무가 얽히면 풀기가 아주 어렵다는 데에서 유래되었다.

흔히 갈등 상황은 나쁜 것이며, 애초에 만들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갈등을 초래하거나 드러내는 행위는 비난을 받는다. 그래서 사람들은 갈등이 예상되는 주제는 아예 꺼내지 않거나 그 문제에 대해서 솔직하게 말하지 않는다. 궁금한 일에도 ‘괜히 말을 꺼내면 불편한 관계가 되지 않을까’해 참는다. 그리고 표면적으로는 문제가 없는 것처럼 지내지만, 속으로는 서로 불평하거나 싫어한다. 그건 참는 것이 아니라 회피하는 것이다. 그런 만남이 계속되면 갈등이 심화되어 좋은 관계로 나아가지 못한다.

가정, 직장, 친구, 친목모임 등 사람이 모이는 곳에서는 늘 갈등이 따라 다닌다. 가족관계에서도 갈등은 필수적인 것 같다. 결혼생활에서 갈등이 없으면 훌륭하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수 십 년간 다른 환경에 자라왔고, 성격 차이, 남녀 차이 등을 고려한다면 갈등은 당연한 것이다. 갈등이 없다고 말하는 사이는 갈등이 없는 것이 아니라 갈등을 ‘회피’하는 것이며, 그것은 건강한 관계가 아니다.

진짜 문제는 갈등 상황이 문제가 아니라, 갈등을 이유로 서로 단절, 배제, 포기하는 것이라고 한다. 갈등을 경험하지 않고 대화하고 관계할 수는 없다. 이것은 마치 실패하지 않고 성공하기를 바라는 것과 같다. 갈등을 회피하거나 포기해서는 안 되며, 상대를 배제해서도 안 된다. 자신과 생각과 방식이 다르다고 관계를 단절하는 사람을 보면 안타깝다. ‘나와 생각이 다른 당신과는 앞으로 절대로 일하지 않을 겁니다!’라는 말은 ‘나는 앞으로 내 생각과 고집대로만 할 것입니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그런 사람은 차라리 혼자 살아가는 것이 적합할 것이다.

부부싸움을 해결할 때도 서로 당기기만 하면 더 꼬인다. 얽혀있는 칡과 등나무가 더욱 조여들 것이다. 내가 먼저 놓아 주어야 상대도 놓아주고, 얽힌 부분을 풀 수 있는 틈이 생긴다. 가끔 필자의 아내가 바느질을 하다가 얽혀버린 실타래를 풀어달라고 요청할 때가 있다. 그때는 도전정신이 살아난다. 그리고 마침내 실타래를 풀었을 때는 묘한 성취감과 으쓱한 마음이 든다. 성공한 사람들은 실패를 회피하지 않고 오히려 즐긴다. 사람과 집단 관계에서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갈등을 회피하지 말고 부딪히고 즐겨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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