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베는 지난번 북진에서 난장을 틀었을 때 풍기 피륙상 천용백이 가지고 왔던 강포라고 하는 강원도 베였다. 최풍원이 동창 구레골에 사는 버들쟁이 구 씨를 만나러 오면서 강포를 가지고 온 것은 마을 사람들에게 이를 나눠주기 위해서였다. 지난날 마골산 수리골에서 살던 때가 생각나서였다.

월악산 영봉 아래 깊숙하게 숨어있는 구레골 역시 수리골 못지않은 산중이었다. 수리골·구레골이 같은 점이 있다면 두 곳에 사는 사람들이 고향에서 살 수 없어 몸을 피해 숨어든 마을이고, 다른 점이 있다면 구레골은 이제 정착해서 마음 놓고 살 수 있는 곳이 되었지만 수리골은 아직도 박해를 피해 도망자처럼 불안한 나날을 보내고 있을 것이란 점이었다. 어떤 상황이더라도 사람들 생활은 거기서 거기였다. 먹고 입고 자는 것이었다. 사람이 사는데 먹고 자는 것도 중했지만, 그 못지않게 입성도 중요했다. 아무리 배가 불러도 입성이 부실하면 사람 구실하기 어려웠다. 배고픈 것은 보이지 않으니 숨길 수 있었지만, 입성은 그리 할 수 없었다. 입성은 남의 눈에 금방 띄었다. 사람들은 입성을 보고 그 사람을 재단했다. 주머니 속에 돈이 있어도 차려입은 사람과 허름하게 입은 사람은 대접이 달랐다. 장날 주막집을 가도 칙사 대접받으며 앉아서 먹는 사람은 입성 좋은 사람이었고, 남루하게 입은 사람은 천대 받으며 쭈그리고 앉아 먹어야 했다. 최풍원도 수리골에서 살던 그 때 연풍장을 나오면 잔칫집 누렁이 쫓기듯 수도 없이 당했던 일이었다. 월악산 동창 구레골은 연풍 마골산 수리골과 지척의 거리에 있었다. 구레골에서 내려와 송계계곡을 거슬러 올라가 미륵리 삼거리에서 지릅재를 넘어 안보로 해서 소조령을 넘으면 연풍 땅이었다. 그 거리가 불과 사십 리 안팎이었다. 최풍원은 그때를 생각하며 비록 거친 베였지만 구레골 행보 때 강포를 가져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구 형, 적삼이나 하나 해 입으라고요.”

최풍원이 버들쟁이 구 씨에게 지나가는 말처럼 대답했다.

“내 적삼 꺼리를 왜 주느냐 그 말이오?”

버들쟁이 구 씨가 가당치도 않다는 표정을 지었다.

지난 날 최풍원이 수산장에서 버들쟁이 구 씨를 만났을 때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그의 차림새였다. 대부분 사람들이 장에 간다고 대문을 나설 때는 그래도 집에서 그중 나은 옷을 차려입고 나오는 것이 보통이었다. 버들쟁이 구 씨도 그날 장에 나올 때는 그리 했을 것이었다.

그런데도 구 씨의 입성은 형편없었다. 남루하다는 표현도 그가 걸친 입성에 비하면 사치할 정도였다. 그것은 옷이 아니라 단지 몸을 덮고 있다고 보는 것이 정확했다. 더구나 버들쟁이 구 씨는 대바구니를 팔러 나온 장사꾼이었다. 장사꾼이 가지고나온 물건만 좋으면 되지, 그가 입은 그깟 입성이 뭐가 중요하냐고 할지도 모르겠다. 물론 원칙은 그렇다. 그러나 그런 원칙이 꼭 들어맞는 것은 아니었다. 그날 버들쟁이 구 씨의 차림은 너무 험해서 지게에 잔뜩 지워놓은 대바구니는 보이지도 않았다. 그러나 최풍원은 차마 그 말을 할 수는 없었다.

“구 형에게만 주는 게 아니라, 바구니를 만든 구레골 사람들에게 골고루 나눠주시오. 그리고 이건 영남 장사꾼이 가져온 강포라는 건데 이쪽 베에 비하면 형편없소. 값도 싼 것이니 그리 부담가지지 않아도 되오!”

“아무리 그래도 바구니 만들어주고 너무 신세 지는 것 같아 껄쩍지근 하오이다.”

최풍원의 이런저런 말에도 버들쟁이 구 씨는 영 찝찝한 표정이었다.

“앞으로 내가 부탁하면 구 형은 지금처럼 바구니만 잘 만들어주면 되오!”

“그야 버들쟁이가 당연히 해야 할 일 아니오?”

“구 형이 마을 사람들도 잘 얼러서 잘 좀 해 주시오!”

“그건 심려 마오!”

버들쟁이 구 씨가 최풍원의 부탁을 찰떡같이 약속했다.

“구 형, 우리가 가지고 온 것이 있으니, 마을사람들을 모두 모이라 해서 같이 밥이나 먹도록 합시다!”

최풍원이 구레골 사람들에게 저녁을 내겠다고 했다.

“원, 뭐가 뭔지…….”

갑작스런 이야기에 버들쟁이 구 씨는 당황했지만, 이것도 갑작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최풍원은 미리부터 생각하고 북진본방을 떠날 때 준비를 해서 온 것이었다. 굶는 것을 밥 먹듯 하고, 먹는 것이 부실한 사람들에게 밥 한 사발 주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 것인지 최풍원은 익히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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