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독교장로회 나눔교회 목사·시인

그의 필명은 김백산이다. 진주경상대학의 신경득 교수께서 지어주신 이름이다. 그런데 그는 어머니가 부르던 이름으로 바꾸었다. 김용복 참으로 촌스럽고 그렇지만 어떻게 보면 동명이인도 많고 많은 평범한 이름을 택했다는 것이 착해 보이기도 한다. 이 친구는 나와 30년 사귀었을 것이다. 보은이 고향이고 청주상고를 졸업하고 취직을 해서 한국타이어에 십년의 노동자 생활을 했다.

노동자로 지금도 살지만 조적공이다. 벽돌을 쌓는 기술을 가지고 있는데 최고의 기술자이다. 그가 쌓으면 일직선 빈틈이 없다. 그런데 이 친구가 술을 좋아해서 결혼도 파경에 이르고 두 딸과 아내를 일찍 이혼으로 인생의 일 막을 정리했다. 살면서 노숙자 생활을 할 때 보니 사람이 아니었다. 그 몰골은 내가 본 사람 중에 아주 최악이었다.

어제 그런 그가 세 번째 시집을 들고 상당공원 무료급식 하는 곳 의자에 앉아 전화를 했다. ‘김 목사님 시집 나왔어요. 이미 나는 그의 시집이 서울의 내 친구 출판사에서 나온 줄을 알고 있었다. 그 시집 제목이 ‘쇠비름’이다. 쇠비름은 어머니의 이야기이고 누님의 이야기이다. 밭에서 일하시던 어머니 그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고 없고 그의 누님도 70이 넘어 노동력을 상실했다. 서울의 방적공장에 나가 일하기도 하고 농사도 짓기도 했는데 요즘은 병원신세를 자주 진단다. 대농이 그런 공장이기도 했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말이다.

김용복 시인은 지금 간암으로 투병 중에 있다. 완쾌됐다고 하지만 엊그제 병원에 혈액에 세균이 감염되어 치료를 받고 나왔다고 한다. 자전거를 끌고 나를 짜장면 집으로 인도한다. 나의 모습도 노숙자와 닮았다. 상당공원에서 무료급식 하던 모습 그대로 청바지차림에 티셔츠와 모자를 쓰고 있으니 사람들이 나를 알아보지 못한다.

그의 일생은 불행하다고 할지 모르지만 행복한 시인이다. 그의 시집에 ‘육거리 시장사람들’이야기가 연작으로 서른 편이 넘게 실려 있다. 무심천과 청주이야기들이 시의 주제다. 그는 노동을 상실해서 일도 나가지 못한다. 다만 그는 국가가 주는 최소의 생계비로 생을 이어간다. 그의 시집은 아마도 절약하고 절약해서 낸 시집일 것이다. 그런데 나는 또 이 시인의 마음을 건드렸다. ‘육거리 시장사람들’이라는 제목의 시집이 나을 뻔 했다고 했지만 김용복 시인은 ‘쇠비름’이다. 그의 시집을 받아들고 이발소로 갔다. 이발을 하고 난 나의 얼굴은 딴 얼굴이다. 거기 김용복 시인의 얼굴이 겹쳐지기 시작했다. 머리를 감고 드라이를 하고 집에 왔는데 개가 짓는다. 이발소 주인이 시집을 들고 왔다. 놓고 가셨네요.

그의 시집을 가지고 교회에 갈 것이다. 그런데 엉뚱하게 목사님 내일 교회에 나갈께요. 나오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나온단다. 허참이다. 나오랄 때는 안 나오더니 나오지 말라고 하니까 나온단다. 그의 시집을 읽으면서 울었다. 돌아가신 어머니, 아버지 때문에 울다. 내 신세가 김용복 시인이 말하는 육거리 시장사람들보다 못하다. 그들에게 배워야 하겠다. 시를 읽으면서 많은 감동을 받았다. 소외당하고 억울하게 인생을 가난하게 살았지만 그는 훌륭한 조적공이고 시인이다. 그에게 배운다. 울지 마라. 슬퍼하지 마라. 외로워하지 마라. 너는 시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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