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권 시절 법원행정처가 판사를 사찰하고 재판에 개입한 정황이 사법부 자체 조사를 통해 드러났다. 당시 양승태 대법원장은 전교조 ‘법외노조(노조아님) 재판’, KTX 승무원해고 건 등 사회적 이슈가 됐던 몇 가지 재판을 청와대와 교감하며 법원의 이권과 타협을 시도한 것으로 알려져 충격을 주고 있다. 이는 사법부 블랙리스트 사태의 연장선상에서 사법부의 근간을 뒤흔든 엄중한 사건이다.

사법부 내에서도 비판과 함께 철저한 수사를 촉구하는 분위기다. 서울중앙지법 단독판사회의와 서울가정법원도 내달 4일 단독 및 배석판사 회의를 열고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관련 특별조사단의 조사 결과에 대해 논의한다.

이명박·박근혜 정권시절 이른바 사법부 블랙리스트 의혹에 대해 사법부가 자체적으로 지난 1년 2개월간 세 차례 조사가 진행됐음에도 양 전 대법원장에 대해서는 조사가 이뤄지지 않았다. 단독 및 배석판사회의에서 법관들은 이번 조사 결과에 관한 의견을 수렴하는 절차를 거친 뒤 전국법관대표회의에서 양 전 대법원장에 대한 조사를 강력히 촉구하겠다는 입장이다. 법원노조도 양 전 대법원장에 대해 검찰 수사가 이뤄져야 한다며 형사고발 한다는 방침이다.

법원노조는 “특별조사단의 발표는 국민의 의혹을 완전히 해소하지 못했고 책임자에 대한 형사처분은 보고서에 언급조차 없다”며 “특별조사단의 구성 주체와 조사 방법의 한계에 의한 것으로, 이를 해결하려면 강제수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어느 때보다 검찰의 철저한 수사가 필요한 상황이다. 수사는 관련자 진술에 의존할 것이 아니라 누락된 미공개 문건을 공개하고 주요 관련자들에 대한 성역 없는 수사를 해야 한다. 법원이 제 식구 감싸듯 대응이 미봉책에 그칠지, 철저한 진상규명을 통해 책임자 처벌과 재발방지대책 수립까지 이어질지 의문이다. 후자가 되도록 해야 한다.

김명수 대법원장도 사법행정권 남용에 대한 후속조치와 관련해 양 전 대법원장의 추가조사 가능성을 열어 두었다. 특별조사단의 최종보고서가 중요해졌다. 조사단은 철저하게 조사해 양 전 대법원장의 수사가 이뤄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사법부내에 만연했던 적폐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발본색원하는 심정으로 가려내야 한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관련 특별조사단이 조사한 410개 파일의 원문도 당연히 공개돼야 한다. 비공개된 문건에는 ‘세월호 사건 관련 적정 관할법원 및 재판부 배당 방안’, ‘한명숙 판결 이후 정국 전망 및 대응전략’ 등의 파일이 포함돼 있다. 조사단은 이번에 사법부의 치부를 제대로 공개해 환부를 도려내지 못한다면 또 다른 적폐가 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사법부의 민낯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 오히려 역사에 두 번 죄를 짓지 않는 일이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양 전 대법원장을 검찰에 고발하기로 했다. 재판의 부당했음을 주장하며 수사와 함께 전교조에 대한 ‘법외노조 통보’ 즉각 취소를 청와대에 촉구하기도 했다. 조사단에 의해 발견된 문서에 따르면 대법원은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문제를 사법정의를 세우는 법리적 판단이 아닌, 상고법원 입법추진 등 대법원의 현안 과제를 달성하기 위한 정치적 흥정 대상으로 삼았다는 것이 드러났다. 사법부의 적폐를 상징하는 대목이다. 검찰은 삼권분립을 교란하고 헌법질서를 어지럽힌 양 전 대법원장과 관련자들에 대한 철저한 수사가 진행돼야 하며 사법부는 개혁을 통해 재발방지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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