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청주민예총 사무국장

여러 날 차분해지려 노력하고 있다. 겉이 들뜰수록 내면의 깊이가 얕아지는 기분이다. 내면의 말은 사라지고 껍데기에서 아무렇게나 흘러나온 말들이 허공에 흩어지고 흩어진 말들은 비수가 되어 날아온다.

사실, 가벼운 말들은 나를 감추기 위한 안전장치 같은 것이다. 나를 드러내는 일이 얼마나 두렵고 어려운 일인지 알기에, 나는 나를 들키지 않으려 가벼움을 택했다. 그것이 누구에게도 상처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나와 다른 성격이나 성향을 가진 사람을 만나면 힘들 때가 많다. 사람이 달라야 얼마나 다르겠냐고 묻겠지만, 우리가 편한 길을, 편한 삶을 추구하듯 우리의 내면은 더욱 불편함을 참지 못한다. 특히, 나와 다른 생각, 다른 의견과 충돌할 때면 더욱 어려움을 겪는다.

실제로 의견이 다른 사람이 충돌할 경우 의견의 다름보다는 성격이나 성향의 다름으로 인해 이견 조율의 어려움을 겪는다. 상대방에게 좋지 않은 감정이 있는 경우에는 절대로 타협이 불가능하다. 상대방에 대한 감정은 여러 날 보아온 결과이므로, 그 사람의 결론은 확고부동한 경우가 많다. 그러나 대부분은 서로에 대한 오해에서 시작된다. 오해를 풀 수 있는 시간 없이 서로 장벽을 치고 절대 무너지지 않도록 견고히 한다. 시간이 흐를수록 벽은 높아만 가고 오해는 진실이 되고 진리가 되어 간다. 말처럼, 다른 이를 인정하는 일은 쉽지 않다. 마음으로는 이해하고 인정한다 하지만, 나의 분노와 조우하는 순간 오로지 나는 나를 만날 뿐이다. 나의 입장이 중요하듯 상대방의 입장도 중요하지만, 우리는 대화의 기술이 부족하다.

나의 내면과 상대방의 내면이 나누는 대화를 해본 적 있는가. 요즘, 나는 나의 존재에 대해 생각한다. 존재감이 없다고 느끼는 것이 무슨 연유인지 알 수 없으나 아마 나의 얕은 언어와 행동, 나의 깊이를 감춘 대가려니 생각한다. 말도 안 되는 아재개그가 나의 특기인 양, 같잖은 개그에 반응해주는 이들의 존재성이 그저 반가웠는지 모른다. 그리하여 나는 나를 드러내지 않는 대신에 타인의 내면에 관심이 없었다. 간혹, 타인의 고민이 나의 내면을 두드릴 때 있었지만, 대답 없는 메아리에 던지는 질문처럼 불편했다.

다름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 내가 차분해지려고 하는 것, 내면의 깊이를 느끼고 그 속으로 들어가려 하는 것은 모든 사물에 적용될 것이다. 내가 너에게 온전히 다가가는 일은 나와 너의 다름을 인정하는 일이듯, 너의 다름에 다다르는 일은 온전히 나의 내면에 다가가는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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