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곡의 양짓말 남쪽에 있는 지소는 마을 전체가 종이를 만들었다. 그래서 인근사람들은 그곳을 지소거리라고 불렀다. 종이를 만드는 일은 보통 고된 일이 아니었다. 오죽하면 백 번 손이 간다고 해서 백지라는 말이 생겼을 정도였다.

보통 추수가 끝난 늦가을이 되면 밭둑이나 야산에 자라고 있는 닥나무를 베어낸다. 그리고 닥나무를 서리서리 말아 큰 솥에 채운다. 닥나무는 잘 휘기 때문에 긴 가지를 부러뜨리지 않고 둥글게 잘 말 수 있다. 그 다음에는 솥에 물을 붓고 김으로 닥나무를 쪄낸다. 여기까지는 그래도 그렇게 힘겨운 일이 아니다. 끈기가 필요한 작업은 이제부터다. 삶은 닥나무는 껍질을 벗겨 다시 물에 담가 불린 다음 하얀 속살만 남기고 거뭇한 겉껍질과 푸르스름한 중간 껍질은 벗겨낸다. 남은 하얀 속껍질을 백피라 하는데 이것을 다시 물에 불린다. 잘 불려진 백피를 콩대·메밀대·짚을 태워 만든 잿물에 푹 삶아 질을 연하게 만든다. 그리고는 건져내 흐르는 맑은 물에 사나흘쯤 담가둔다. 이때 백피에 햇빛이 골고루 닿아 표백을 시키기 위해 자주자주 뒤집어주어야 한다. 좋은 종이를 만들려면 질 좋은 닥나무 못지않게 좋은 물이 필요하다. 좋은 종이는 맑은 물에서 만들어진다. 덕곡은 마을 뒤로 봉화재와 남쪽으로 와룡산 아래 깊숙한 골짜기에 자리 잡고 있어 어느 마을보다 말고 차가운 물이 있어 가능했다. 이렇게 며칠 동안 담가놓았던 백피를 건져다 마지막 남아있는 잡티를 한 올 한 올 살펴가며 떼어낸다.

이 과정에서 사람 손이 제일 많이 필요하다. 하루 종일 몇날 며칠 공을 들여도 실제 얻는 깨끗한 닥은 얼마 되지 않는다. 이렇게 얻어진 닥은 섬유질이 풀어지도록 넓적한 돌판 위에 올려놓고 참나무 방망이로 두들긴다. 주막집 할멈의 떡치는 소리가 그득할 것이란 이야기는 참나무로 딱치는 소리였다. 이렇게 두들겨진 닥나무 섬유를 명주 같은 고운 천에 싸서 흐르는 물에 흔들어 씻어준다. 이는 누렇게 되는 변색을 막고 부드러운 종이를 만들기 위해서이다. 풀어진 닥을 이다음 깨끗하게 씻어진 닥을 지통에 넣어 골고루 풀어지게 저어준 다음 여기에 닥풀을 섞어 다시 저어준다. 그런 다음 발을 지통 속에 넣어 전후좌우로 흔들어 닥의 섬유질을 고르게 건져낸다. 이것을 ‘종이 뜬다’고 한다. 종이를 뜨고도 종이를 만드는 과정이 모두 끝난 것이 아니다. 종이를 뜬 다음에는 나무판 위에 포개어 쌓고 그 위에 무거운 돌을 얹어 물기를 뺀다. 그런 다음 한 장씩 땅바닥이나 나무판에 붙여 햇볕에 말린다.

그리고 다시 종이를 여러 겹으로 쌓아 도침질이라고 하는 방망이질을 계속해줘야 질기고 매끈한 종이를 얻을 수 있다. 이 과정을 모두 거쳐야만 드디어 완성된 종이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워디로 가는 길이여?”

“송계 버들쟁이네 갑니다.”

“거긴 왜?”

“맞춰놓은 바구니를 가지러 갑니다.”

“그깟 바구니가 얼마나 된다고 저렇게 많이 싣고 가나?”

주막집 할멈은 마소에 실린 짐을 보며, 저것을 전부 바구니 값으로 치를 물건인 줄 알고 있는가보다.

“바구니는 삼백 개쯤 되고, 저 물건은 다른 곳에도 쓸 것들이오.”

“바구니가 삼백 개라고! 뭣 하는데 바구니가 그렇게 많이 필요한가?”

“한양으로 배에 실려 보낼 물건을 담을 바구니요.”

“그래도 삼백 개면 엄청난데, 뭘 담으려고 그러나?”

주막집 할멈은 궁금한 것도 많다.

“청풍에서 나는 산채들을 담아 보낼 바구니요.”

“산채는 다 맞춰놓았소?”

“지금 한창 준비하고 있소.”

“청풍이나 서창이나 서로 인근이니 여기 산채들은 안 되오?”

서창도 산채들이 좋았다. 서창뿐만 아니라 송계, 덕산도 월악산 아래 있는 마을이라 귀한 약재와 산채들이 풍부했다. 주막집 할멈은 청풍 산채만 보낼 게 아니라 자기 동네 나물들도 사줄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왜 안 되겠소. 물건만 좋다면 얼마든지 사들이지요.”

“그럼, 청풍장날 가지고 나가면 되나?”

주막집 할멈이 청풍 장날에 맞춰 가지고 가면 되느냐고 물었다.

“아니요! 북진나루 건너 북진본방으로 가져오시오. 그리고 장날이 아니더라도 언제든 가져오면 되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충청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