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5월도 하순으로 접어들었다. 꽃집을 가득 채우며 손님을 기다리던 카네이션도 이젠 자취를 감추었다. 어버이날에 이어지던 스승의 날이 지나고 나서부터인 것 같다. 부모님의 가슴에 정성스럽게 달아드리기 위해 카네이션을 준비했던 따뜻한 손길이 그 며칠 뒤 이어지는 스승의 날엔 언제부터인가 주춤하며 망설이는 것 같다.

필자는 이번 스승의 날엔 출장이 있어서 외지에 나가게 됐다. 스승의 날에 직접 가르치는 선생님의 한 사람을 바로 눈앞에 대하지 않아도 될 학생들의 입장을 생각해보면서 필자는 제자가 없는 홀가분한(?) 스승의 날을 지낼 수 있었다. 그런데 휴대폰에 몇몇 옛 제자로부터 문자가 도착해 있었다. 문자의 내용은 필자를 추억 속으로 빠져들게 하기에 충분했다. 이제 쉰을 바라보는 중학생 때 담임을 맡았던 어느 제자는 ‘선생님의 가르침을 잘 받아 씩씩하게 잘 생활하는 제자가 되도록 늘 노력하겠습니다’라는 내용의 문자를 보내왔다. 지천명의 나이에도 제자에게 필자는 여전히 중학교 때 담임선생님으로 느껴지는가 보다. 그리고 어떤 제자는 ‘서른일곱,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가 됐지만, 선생님을 부르면 전 아직도 열일곱 꽃다운 여고생이 되는 것 같아요. 열심히 살아라. 똑바로 살라고 말씀해 주시지 않으시지만 저를 응원해주시는 선생님의 마음을 알 수 있어 늘 든든했답니다. 예전 같지 않게 빛바랜 기념일이라 의미도 퇴색됐지만, 저는 부를 수 있는 선생님이 계셔서 오늘이 참 감사하네요. 건강하세요, 선생님~ 중년의 멋스러웠던 선생님을 이 제자가 늘 기억할게요’라고 보낸 제자도 있었다.

이런 저런 내용의 문자를 보면서 필자는 제자를 가르치며 살아온 오랜 세월을 반추할 수 있었다. 교사로 더 잘하지 못해 후회되는 일도 많았다. ‘더 열심히, 더 성실하게, 더 자상하게 대할 수도 있었을 텐데’라는 아쉬움이 내내 남았다. 출장을 끝내고 교무실로 돌아온 필자는 책상 위에 있는 종이 한 장을 발견했다. 언뜻 부담임을 맡고 있는 반의 학생들 글씨가 눈에 띄었다. 20여명의 학생들이 저마다 한 마디씩 적어 놓은 핑크색 A4 용지 한 장! 종이에는 ‘오랜 시간 교직생활 힘든 일도 많으셨겠지만 저희를 위해 노력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전 항상 선생님이 좋았습니다’ 등의 문구가 기록되어 있었다. 기록되어 있는 글귀를 모두 읽으며 필자는 뭉클한 감동을 글귀마다 느꼈다. 그리고 남은 교직생활 동안 정말 열심히 제자들에게 보탬이 되는 스승이 되어 보기를 굳게 마음먹었다.

오랜 교직생활을 하면서 솔직히 그동안의 스승의 날에 행복하다거나 교사로서의 자부심을 느꼈다거나 했다면 그것은 거짓말일 것이다. 그만큼 우리 사회는 더 이상 스승을 막연히 존경하지도 존중하지도 않는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많은 선생님들은 스승의 날에 가장 큰 바람은 조용히 지나가는 것이라고들 한다. 필자도 역시 그랬는지 모르겠다. 스승의 날과 관련되어 더욱 강화되는 각종 제재가 가슴을 더욱 답답하게 하기도 했다. 그래도 필자는 믿는다. ‘아직 그토록 많은 수험생들이 임용시험을 거쳐 교사가 되기를 학수고대하고 있는 한 교단은 견고할 것이다. 아직도 많은 학생들은 선생님을 따르고 있고, 마음속으로 존경하고 있다! 그리고 선생님들은 앞으로도 여전히 제자를 헌신적으로 사랑하고 돌볼 것이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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