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풍원 일행이 엉금엉금 기다시피 경심령을 내려와 봉화재에서 내려오는 길과 만나는 주막거리에 닿았을 때는 어느덧 점심참이 지나 있었다. 아침 일찍 북진본방을 떠나 중간에 광의·양평·연론 임방을 들리고도 경심령까지 넘어 봉화재 아래 서창 주막거리에 당도한 것은 팔팔한 동몽회원들이 꾀부리지 않고 마소까지 보살피며 부지런히 걸어왔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저녁나절이나 되어야 겨우 도착할 수 있는 길이었다.

“저기 주막에 들려 한숨 쉬었다 가자!”

주막이 보이자 요기도 할 겸 최풍원이 동몽회원들에게 말했다.

서창 주막거리는 길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었다. 인근 마을에서 충주로 가는 사람들, 제천으로 가는 사람들, 단양으로 가는 사람들은 물론 멀리서는 강원도·경상도 사람들까지 서창 주막거리를 지나지 않고는 어디로도 갈 수 없었다. 그러니 사시사철 주막거리는 번잡했다.

“할멈, 오랜만에 뵙습니다!”

최풍원이 길가 어떤 주막으로 들어가며 인사를 건넸다.

“그러게. 두어 해는 됐나 싶지?”

인정스럽게 생긴 주막집 할멈이 최풍원 일행을 반갑게 맞았다.

“그리 됐을 성 싶습니다.”

“통 보이지 않기에 장사를 그만뒀나 했구먼.”

“장사꾼이 장사를 그만두면 뭘 합니까?”

“그런데 어째 그렇게 발걸음이 뜸했는가?”

“그간 여러 일들이 있었습니다.”

“그래도 저렇게 마소에 물건을 싣고 일행을 거느리고 다니는 것을 보니 잘 됐나보구먼.”

할멈이 주막집 삽짝 밖에 매어놓은 마소와 동몽회 회원들을 번갈아 살피며 말했다.

“그리 되었습니다.”

“그런데 같이 다니던 그 힘 좋게 생긴 총각은 보이지 않네?”

 주막집 할멈은 장석이를 떠올리며 하는 말 같았다.

그동안 충주는 수없이 오갔지만 서창 주막거리를 들른 적은 몇 해가 됐을 성 싶었다. 그러고 보니 최풍원이 충주 윤 객주 상전에서 물건을 받아 산지사방을 떠돌아다니며 행상을 할 때는 자주 발걸음을 했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서창 주막집에 들렸던 것이 살미장에서 무뢰배를 만나 봉변을 당할 뻔 했지만 임근포 행수 덕분에 위기를 모면했던 그때가 마지막이었던 것 같았다. 그때 장석이와 함께 지게 짐을 지고 행상을 다녔었다.

“그 형은 북진에서 전을 지키고 있습니다.”

“일꾼들을 저리 여럿 거느리고, 전까지 냈다면 크게 성공을 했나보구먼.”

주막집 할멈이 박수를 치며 대견해했다.

“요새 이쪽 사정은 어떻습니까?”

궁금해 하는 노파의 물음 대신 최풍원이 서창 쪽의 장사 사정에 대해 물었다.

“봄이 되니 많이 좋아졌구먼.

“요새 뭐가 많이 나지요?”

“보리나 조 수확은 안직 이르고, 촌에는 요즘이 좀 한가한 편인데 덕곡에서는 동네사람들이 지네를 잡느라 야단들이구먼!”

“덕곡에서 지네를 잡는다고요?”

지네는 독이 있고 생긴 것이 징그러워 사람들이 질겁하지만, 사람 몸에 쌓인 독성을 배출시키는 해독작용을 하고, 어혈을 풀어주고, 경련을 멈추게 하는 약성을 지니고 있어 약국에서 약재로 쓰였다. 민간에서는 지네를 갈아 고약을 만들어 사용하기도 했다. 큰 고을이든 시골이든 백성들의 생활은 거칠고 불결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보니 온갖 벌레들에게 물려 사람들은 피부병과 종기에 시달렸다. 그러나 백성들은 그 정도로 약국을 갈 수는 없었다. 백성들이 약국에 가는 것은 아주 크게 다쳤거나, 죽을병이 걸려 자리를 보전하고 누웠을 때였다. 당장 먹고 살기도 급급한데 종기 따위로 약국을 가는 것은 아예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식구 중 누가 한 명 부스럼이 나면 식구 전체에 옮아 퍼졌다. 더구나 날이 따뜻해지고 무더운 여름이 되면 부스럼은 기승을 부려 마을 전체가 피부병에 시달렸다. 오죽 부스럼이 창궐했으면, 정월 대보름날 콩을 볶아 깨물며 부스럼을 깨문다고 했겠는가. 그래서 부스럼이 나면 민간에 내려오던 비방으로 지네를 잡아 말려두었다가 갈아서 고약을 만들어 종기에 발랐다. 그런 지네를 잡느라 덕곡에서 야단이 났다니 그 이유가 궁금했다.

“어떤 사람들은 일도 팽개치고, 전다지 지네만 잡기도 한다는 구먼.”

“그걸 뭣에 쓰려고 그런다나요?”

“농사 짓는 것보다 그게 더 낫디야. 농사는 일년 내내 지어 가을이나 돼야 수확할 수 있지만, 지네는 잡으면 바로 돈이 되니 그런다는구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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