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이 덕산 인근에 모두 있었다. 그 하나는 경상도 문경에서 월악산 미륵리로 넘어오는 하늘재와, 문수봉 너머 문경 동로에서 덕산 성천 상류 도기리로 넘어오는 모녀티가 있었다. 이들 고개만 넘으면 충주와 바로 연결되었다. 충주에만 당도하면 한양은 단숨에 다다를 수 있었다. 규모가 작은 성이기는 하지만 이들 성의 역할은 대단히 컸다. 이들 중 하나가 경심령이었다. 경심령이 산중 깊숙한 곳에 숨어있어 아주 궁벽한 고개로 보이지만 육로든 수로든 때에 따라서는 전략적으로 아주 중요한 요충지였다. 그런 까닭에 이미 예전부터 이런 외진 곳에 성을 쌓았던 것이었다.

“옛날 사람들은 어떻게 알고 이런 곳에 성을 쌓았는지 신기해요.”

강수가 최풍원의 지형 설명을 듣고 한 말이었다. “요즘 사람들은 자기들만 똑똑하다고 생각하지만, 자기들이 지금 알고 있는 것을 예전 사람들도 이미 다 알고 있었다는 걸 모르지.”

“옛날 사람들은 그런 걸 어떻게 알았을 까요?”

“요즘 사람들처럼 얕은 지식이 아니라 지혜겠지?”

“지혜요?”

“세상 돌아가는 이치와 도리를 꿰뚫어 보는 것 아니겠느냐? 눈 앞에 보이는 것만 쫓지 말고 장사도 그렇게 해야 하는데…….”

“…….”

강수가 무슨 뜻인지를 몰라 어리벙벙해했다.

“오늘 우리가 갈 송계마을은 저어기 영봉 아래다.”

그러자 최풍원이 손가락으로 월악산을 가리키며 말머리를 돌렸다.

“여기서는 얼마나 되는 가요?”

“고개 아래 저기 화전뙈기 보이지. 거기가 밤나무골이여. 그 골짜기를 빠져나가면 봉화재에서 내려오는 길과 만나는 곳에 주막거리가 있고, 지소거리가 나오지. 거기서 오리를 채 가지 않아 서창이 있는데, 서창에서 다시 한수 쪽으로 가다 복평에서 꺾어 계곡을 따라가면 송계가 나온다. 여기서부터는 한 삼사십리는 족히 될까나.”

강수가 오늘 가야할 길에 대해 궁금해 하자 최풍원이 자세하게 설명을 해주었다.

“대주님은 길에 대해 훤하시네요?”

“청풍 근방이야 그렇지. 그렇지만 청풍을 벗어나면 전다지 모르는 길이지.”

“그럼 어떻게 다니나요?”

“이눔아, 입 뒀다 뭐 하느냐? 모르는 길은 사람들한테 물어보기도 하고, 등 너머로 남 하는 이야기를 들어 알기도 하지. 살아가며 그렇게 배우는 게 많지, 어떻게 혼자 세상일을 다 알 수 있겠느냐? 그러니까 다른 사람의 얘기도 들을 줄 알아야 한다.”

“그렇겠네요!”

“여기서 저기 보이는 왼쪽 산길로 가면 봉화재를 거쳐 고산사가 있는 와룡산성으로 해서 탄지리 뒷산 장자봉으로 갈 수도 있지. 장자봉에서 탄지리로 내려가 물길을 따라 송계로 갈 수도 있지. 우리는 이 길로 간다!” 최풍원이 사람들 발길이 닿아 확연하게 드러나 있는 오른쪽 길을 가리켰다. 경심령 관행길이었다.

“우린 어디로 가나요?”

“봉화재로 가는 길은 산길로만 이어져 빈 몸으로 급히 갈 때나 가는 길이고, 우리는 마소와 짐이 잔뜩 있으니 그래도 큰길로 가야지!”

“그 길도 만만찮아 보이는데요?”

강수가 경심령 날망에서 밤나무골로 내려가는 된 비알을 보며 걱정스레 말했다.

“경심령은 참 요상한 재다. 보통은 오르는 길이 된 비알이면 내려가는 길이 수월한 법인데, 이 고개는 내려가는 길이 더 까풀막지다. 오죽하면 경심령에서 한 번 미끄러지면 서창 샛강에 나가떨어진단 말이 나왔겠느냐?”

“대주님, 사람보다 짐 실은 마소들이 더 걱정입니다. 행여 미끄러져 발목이라도 부러지면 낭패 아닙니까?”

강수가 자못 근심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경심령재는 소문대로 콧물고개요, 눈물고개였다. 연론에서 올라올 때는 코가 닿더니, 밤나무골로 내려갈 때는 엉덩이가 노다지 땅에 닿았다. 조금만 발을 잘못 디뎌도 미끄러지며 엉덩방아를 찧어 눈물이 찔끔찔끔 나왔다. 동몽회원들도 올라올 때는 마소 코가 찢어질 정도로 앞에서 고삐를 끌고 뒤에서는 밀며 올라왔는데, 내려갈 때는 반대로 자칫 미끄러지기라도 할까 뒤에서 고삐를 당기고 꼬리를 잡아당기며 된 비알을 내려왔다. 양반네들이야 가마를 타고 고개를 넘었으니 경심령을 말로만 험하다 이야기하겠지만, 고개 아래 백성들은 그들의 행차 때마다 그들을 메고 지고 두발로 걸어 이 험한 고개를 넘어야했으니 하세월 동안 지금도 마을사람들은 등골이 빠지는 곤욕을 치루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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