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만 먹으면 우리 것을 한순간에 채가는 놈들이 천지 사방에 수두룩한데, 빼앗기고 억울해 하느니 애초부터 빼앗길 것이 없는 게 덜 가슴 아프지 않겠어요?”

무뢰배패들과 어울려 다니며 주먹질이나 하고 사는 철부지라 생각했었는데, 가슴 속에 응어리가 단단히 박힌 녀석이었다.

고갯길은 오를수록 점점 가팔라졌다. 나들이라도 가는 것처럼 들떠 떠들어대던 동몽회원들도 말 수가 점점 줄어들었다. 길은 좁아지고 늘어진 가지와 수풀이 눈앞을 가렸다. 그런 오르막길이 산 위로 끝없이 이어져있었다. 수풀을 헤치랴, 마소를 끌고 올라가느라 녀석들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대주님, 당나귀가 엉덩이를 빼요!”

“소는 눈을 까뒤집고 있어유!”

나귀와 소를 몰고 가던 동몽회원들이 경심령 날망 아래 코재에 다다라 다급하게 소리쳤다. 아무리 힘 좋은 마소라 해도 등에 잔뜩 짐을 진 채 거칠고 가파른 고갯길을 오르는데 힘들지 않을 리 없었다. 말 못하는 짐승이라도 힘든 것은 사람이나 마찬가지였다. 가벼운 짐을 진 나귀조차 올라가지 않으려고 뒷걸음을 치니 소금 섬과 곡물 섬을 잔뜩 짊어진 소는 말할 것도 없었다. 소는 기다란 침을 땅바닥까지 흘리며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동몽회원의 말처럼 얼마나 힘이 드는지 소가 허연 눈동자를 드러내며 힘에 겨움을 여실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여기서 주저앉으면 못 올라간다. 마소를 호달궈 재말랑까지 올라채야 한다!”

“대주, 저렇게 힘들어하는데, 조금만 쉬었다 가면 어떨까요?”

“안 된다! 이런 까풀막진 곳에서는 서있어야 서있는 만큼 힘만 더 빠진다. 어서 서둘러 소를 몰아라!”

최풍원이 동몽회원들을 다그쳤다.

동몽회원들이 달려들어 코뚜레가 늘어날 정도로 우악스럽게 당겨대자 소도 죽을힘을 다해 식식거리며 발걸음을 떼기 시작했다. 동몽회원들도 함께 힘을 합쳐 앞에서는 당기고 뒤에서는 엉덩이를 밀며 마소를 끌어올렸다. 왕방울만한 소의 눈에서 눈물이 철철 흘렀다. 마소에 달려 붙지 않은 동몽회원들은 함성을 지르며 마소들의 혼을 뺐다. 조용하기만 하던 경심령 고갯길이 갑자기 도떼기 장마당처럼 시끄러워졌다. 얼마를 그렇게 혼신을 다해 올랐을까 눈앞이 조금씩 터지며 꼭대기가 보이기 시작했다.

“경심령이다!”

“다 올라왔다!”

동몽회원들이 한꺼번에 환호성을 질렀다.

경심령 마루에 올라서자 사람도 짐승도 모두 파김치처럼 후줄근하게 늘어졌다. 모두들 땅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숨을 고르기에 급급했다. 그 와중에 강수만이 일어나 마소 사이를 오가며 길마에 실린 짐을 풀어 땅에 내려놓았다.

“곧 떠날 텐데 번거롭게 짐은 뭣하러 내리느냐!”

최풍원이 쓸데없는 짓을 한다며 강수를 타박했다.

“잠시라도 편히 쉬게 해주려고요.”

“또 실으려면 성가시기만 하잖느냐?”

“여기 애들이 많으니 금방 실습니다.”

그건 그랬다. 최풍원이 혼자 행상을 다닐 때는 잠시 쉴 참에도 마소에 실린 짐을 내려줄 생각은 하지도 못했다. 첫째는 무거운 짐을 내리고 올리는데 힘이 들어서였고, 둘째는 짐을 지고 있는 마소가 힘들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마소가 짐을 지고 있는 것은 당연한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나이 어린 강수 눈에는 그것이 보인 것이었다. 생각할수록 최풍원의 눈에는 강수의 마음 씀씀이가 기특하게 보였다.

날씨는 맑고 창창했다.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경심령 고갯마루에서는 동서가 거침없이 트였다. 동쪽으로는 금수산이 손에 닿을 정도로 가깝게 있었고, 서쪽으로는 멀리 월악산 족두리봉이며 영봉이 아스라하지만 그린 듯 선명하게 보였다. 경심령에서 덕곡으로 내려가 주막거리에서 왼쪽으로 서창을 거쳐 황강벼루를 건너 노루목을 빠져나가면 달천이 나오고 곧 충주 땅이다. 충주에서는 물길이든 육로든 한양의 도성과 직통한다. 주막거리에서 오른쪽으로 틀면 봉화재를 거쳐 수산과 덕산, 단양으로 가는 길이다. 단양에서 죽령을 넘으면 곧바로 경상도 땅이다. 이러한 지리적 위치로 경심령 정상 언저리에는 석성이 하나 있었다. 경심령성은 왼쪽으로 청풍의 망월산성과 오른쪽의 와룡산성과 연결되어 월악산성의 후면에 은밀하게 숨어 있다가 백두대간을 넘어 남한강으로 진출하려는 적을 공격하거나 방어하는 역할을 했을 것이다. 경상도에서 한양으로 가기위해 백두대간을 넘는 고개는 죽령이나 추풍령 같은 큰 고개 말고도 오래된 고개 두 개가 더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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