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풍원이 경심령 입구에 다다라 동몽회원들에게 주의를 주었다.

“짐은 마소가 지고가고 우리는 빈 몸으로 오르는데 힘들 게 뭐 있겠슈”

“아무리 흠해도 지깟게 고개지 별수 있겠슈?”

동몽회원들은 팔팔한 기운만 믿고 모두들 코웃음을 쳤다.

가라현이라고도 불리는 경심령은 청풍군 서쪽에 있는 고개로 험하기로 이름이 나있었다. 길이 매우 험하기는 했지만 사람들 왕래가 잦은 것은 경심령을 넘으면 충주·제천·단양으로 갈 수 있는 기점이었기 때문이다. 마을에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로는 고개가 어찌나 험한지 가마꾼들이 가마를 메고 넘어갈 수가 없어 가마에 끈을 매달아 앞에서 끌어당기며 넘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경심령은 관행길이었다. 아주 오랜 옛날부터 이 고개는 수많은 사람들이 넘나들던 마을의 역사와 함께 하던 길이었다. 기쁜 일도, 슬픈 일도 함께 하며 가마도 넘고 상여도 넘던 그런 길이었다. 그러니 때로는 모두들 즐거움에 겨워 웃음고개가 되기도 하고, 또 어떤 때는 슬픔에 겨워 눈물고개가 되며 사람들의 일생과 고락을 같이하는 그런 존재였다. 그러나 고개 아래 사는 마을 사람들은 기쁨보다는 힘겨운 일들이 더 많았다.

특히나 경심령은 더더욱 그러했다. 청풍 고을의 원님이 부임할 때나 돌아갈 때도 이 고개를 넘어갔다. 청풍관아의 관속들이 일을 보러 다닐 때도 이 고개를 통해 오고갔다. 청풍에는 사시사철 한양의 고관대작이나 팔도 양반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았다. 청풍관아 관내 어디를 가나 펼쳐지는 빼어난 경승을 보기위해 찾아오는 양반네들이었다. 그런 양반님들이 거친 고갯길을 자신들의 두 발로 넘을 리 만무했다. 그들이 올 때면 청풍관아 관속들은 마중을 나왔고, 그럴 때마다 마을사람들은 하던 생업도 내려놓고 양반을 태운 가마를 지는 참마꾼이 되거나 그들이 가지고 오는 짐을 나르는 복마꾼에 끌려 나와야 했다. 빈 몸으로도 넘기 힘겨운 고개를 시림 탄 가마를 메고 짐을 지고 넘자니 어깨는 패이고 허리는 끊어지고 힘에 부쳐 죽을 것처럼 눈앞이 캄캄해져도 짐승을 몰아대듯 호달궈대는 관아 아전들의 등쌀에 숨 한번 편히 쉴 수 없었다. 그래도 그것이 상놈으로 태어났기에 겪는 일이라 생각해 하소연조차 해볼 엄두도 내지 못했다. 마을사람들은 할아버지에 그 할아버지 대 이전부터 이제껏 겪어온 일이었다. 그러니 마을사람들에게는 경심령이 한숨고개요 눈물고개가 되었다. 그래서 이런 이야기도 전해져 내려오는 것이 아닌가 한다.

최풍원과 동몽회원들이 마소를 앞세우고 경심령을 오르기 시작했다. 산길이 시작되자 겨우 마소 한 마리가 지나칠 정도로 길이 좁아졌다. 일행들과 마소들이 한 줄로 늘어섰다. 동몽회원들은 힘이 넘쳐나는지 마소를 사이에 두고 앞 뒤 친구들과 소리를 질러가며 떠들어댔다.

“강수야, 너는 장차 뭘 하고 싶으냐?”

일행들의 뒤에서 행렬을 살피며 뒤따르고 있던 최풍원이 강수에게 물었다.

“…….”

분명 최풍원의 물음을 들었을 텐데도 강수는 말이 없었다.

“내 말이 들리지 않느냐?”

최풍원이 뒤를 따르고 있는 강수에게 재차 물었다.

“저는 대주님 모시고, 이 일이나 하면서 그럭저럭 살랍니다.”

“앞길이 챙챙한 녀석이 그리 꿈이 없어서 쓰겄느냐?”

“저 같은 놈이 꿈을 꾼다고 제 꿈이 되는가요?”

“그건 또 무슨 말이냐?”

“꿈도 꿀만한 놈들이나 꾸는 것이지 내가 꿈꾼다고 내 꿈이 되나요?”

“네가 꾸는 꿈을 누가 어찌 한다는 말이냐?”

“어찌 하는 놈들이 있으니 하는 말이지요.”

여사 말처럼 들렸지만, 강수의 대답 속에는 뭔가 가시가 돋쳐 있었다. 제 스스로의 처지를 비관해서 하는 말 같기도 했지만, 세상이나 아니면 사람들에 대한 불신에서 하는 말 같기도 했다.

“누가 어찌한단 말이냐?”

“또 꿈을 꿔 이루면 뭐 합니까?”

최풍원의 물음에 강수는 제 소리만 했다.

“나이 아직 어린 녀석이 세상을 달관한 것처럼 얘기를 하는구나. 이제 시작인데 구만리 같은 세월을 어찌 꿈도 없이 간단 말이냐?”

“그깟 꿈을 쫓느라 고되게 사느니, 이럭저럭 사는 게 저는 더 좋습니다.”

“왜 그리 생각하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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