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일은 심려 마시고, 대주께서는 소간을 잘보시구려!”

도식이가 최풍원을 안심시켰다.

이튿날 동도 트기 전부터 북진본방은 길 떠날 채비를 하느라 분주해졌다. 동몽회원들도 외양간에 묶여있던 마소를 곳간 앞으로 끌고나와 기다리고 있었다.

“장석이 형님! 아이들이 기다리니 곳간 문을 열어 주시지요?”

도식이가 앞에 서있는 동몽회원들이 들으라는 듯 일부러 소리를 질러 장석이에게 부탁을 했다.

“동생, 뭐가 얼마나 필요한가?”

“대주 말로는 궤짝에는 베와 건어물을 넣어 나귀에게 지우고, 소 길마에는 소금 석 섬씩 지우랍디다.”

“알겠구먼!”

장석이가 쇳대로 곳간 문에 채워져 있는 자물쇠를 열었다. 곳간 안에는 지난 번 열렸던 북진난장에서 걷어 들인 잡다한 물산들이 묶음으로 엮어져 여기저기 어지럽게 널려져 있었다. 장석이가 뒤죽박죽인 곳간 안 물건을 이리저리 헤치며 한쪽에 있던 소금 섬을 들쳐 매고 나왔다.

“뭘 하고 있는 게냐! 냉큼 곳간으로 들어가 소금 섬을 들고 나오지 않고!”

도식이가 멀뚱멀뚱 쳐다보고만 있는 동몽회원들에게 고함을 쳤다. 그 소리에 동몽회원들이 장석이의 소금 섬을 받아 매고, 다른 녀석들은 곳간으로 들어가 소금 섬을 매고 마당으로 나왔다.

“다들 떠날 채비는 되었느냐?”

그때 최풍원이 나타났다.

“대주, 어디로 행상을 떠나는가?”

장석이가 최풍원에게 물었다.

“형님, 행상을 가는 게 아니라, 이번에는 한 바퀴 둘러보러 갑니다.”

“그런데 뭣 하러 마소에는 짐을 저렇게 잔뜩 지워 가는가?”

“그건 그것대로 쓸 데가 있습니다. 갔다 올 테니 형님은 본방을 잘 지켜 주시우!”

“나야 뭐 하는 일이 있는가. 그냥 일이나 하면 되지.”

“형님, 갔다 오겠습니다요.”

최풍원이 인사를 마치고 동몽회원들과 북진본방을 나섰다.

참으로 때는 좋은 때였다. 사방 어디를 쳐다봐도 마음이 푸근했다. 등 뒤 대덕산을 보아도 북진나루 강 건너 비봉산을 바라보아도 세상이 온통 새싹이다. 눈이 호사였다. 

“강수야, 좋지 않으냐?”

최풍원이 자신의 곁에서 묵묵히 따라오는 강수를 보며 물었다.

“예, 대주님.”

강수는 무덤덤하게 대답했다.

“하기야, 너희들이야 아직 나이 어리니 저런 게 눈에나 차겠느냐. 더 재미 진 일이 넘칠 터에…….”

“이런 시절에 저희들이라고 즐겁기만 하겠습니까?”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는 최풍원의 말에 강수가 가시 돋친 말을 했다.

“이런 시절이 어떤 시절인데?”

“대주님께서도 생각하시는 그런 시절이겠지요,”

“내가 생각하는 시절이라, 그 녀석 참…….”

생각지도 못한 강수의 답변에 최풍원은 적이 당황했다.

최풍원은 어린 녀석들이라고 생각도 없이 마구 재미만 있을 것이란 생각을 했다. 더구나 장마당을 휩쓸려 다니며 제멋대로 살아온 무뢰배들이라 고민거리도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강수의 말투 속에서 뭔가 송곳처럼 뾰족한 것이 느껴졌다.

“저는 대주님이 좋습니다.”

느닷없이 강수가 최풍원에게 제 속내를 드러냈다.

“내가 어디가 좋으냐?”

“대주님 같은 분만 계셨어도 제가 이렇게 객지를 떠돌아다니지도 않았을 겁니다.”

“그건 또 무슨 소리냐?”

“…….”

최풍원이 궁금해 했지만, 강수는 더 이상 말문을 열지 않았다. 최풍원도 더는 묻지 않았다.

최풍원 일행이 북진나루를 건너 광의에서 김길성 임방주를, 양평에서 김상만 임방주를 만나 독려하고 연론리에서 박한달 임방주를 만났다. 모두들 북진본방에서 받은 물목을 보고 나름대로 할당받은 물산들을 공납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각 임방주들에게 사월 그믐까지는 본방으로 모든 물산들을 입고시킬 것을 단단히 일러두고 송계 버들쟁이에게로 가기 위해 경심령에 이르렀다.

“고개가 험하니 단단히들 채비하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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