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통대학교 행정학과

종교적으로 순례란 종교 발생지, 본산의 소재지, 성인의 무덤이나 거주지와 같이 의미 있는 곳을 찾아다니며 방문하고 참배하는 것을 의미한다. 종종 인생을 이 순례에 비유한다. 그 인생을 고난의 길로 표현하는 경우에는 초서의 말과 같이 “세상은 불행으로 가득 찬 길이고 우리는 그 길을 지나가는 순례자다”라고 한다. 반대로 인생을 살만한 가치를 강조할 때는 셰익스피어처럼 “진실로 신앙 깊은 순례자는 연약한 발로 여러 나라를 걸어가도 고되지 않다”고 말한다.

종종 이 순례는 신앙의 대상으로부터 가호와 은혜를 받을 목적으로 한다. 힌두교 순례길에 있는 인도 바라나시는 누구나 일생에 한 번 방문해 갠지스 강의 가트에서 목욕하면서 몸과 마음을 깨끗하게 하고, 가능하다면 그곳에서 죽음을 맞이하기를 소망한다. 소원 한 가지는 들어 주신다는 대구 팔공산 갓바위는 대학 입시를 앞둔 학부모님은 세 번은 순례해야 할 순례길이다. 이 순례가 어떤 목적을 가진다면 순례는 기복 신앙이 되어 종교의 가르침과 상충해서 믿음과 신뢰가 세속화될 위험이 있다는 우려의 소리를 듣게 된다.

최근 텔레비전 다큐 프로그램으로 티벳 불교에서 소녀가 순례하는 것을 방영한 적이 있다. 출가와 200Km를 17일 동안 겨울 산속을 걷는 순례길 이야기이다. 순례와 관련해 그 소녀에게 어디로 가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길을 걷는 것이 중요합니다. 순례길은 앞 승려 신발 뒤축만 보고 걷는 것이라고 하고 있다. 또 다른 다큐 프로그램에서 100세가 넘은 할머니를 모시고 아들이 법당에 가서 부처님에게 절하는 것을 방영했다. 절을 다 한 뒤에 아들이 어머니에게 무엇을 빌었느냐고 묻자 할머니는 “그냥 절했어”라고 대답을 하고 있다. 우리는 100세 할머니에게서 오래 살고, 건강하고, 가족이 돈을 많이 벌게 해달라고 기도했다는 소리를 듣기 원했다. 그러나 그 할머니에게 중요한 것은 부처님에게 절을 하는 것이지 부처님이 주시는 복은 아닌 듯하다.

소녀의 순례길이 어디로 가는지 중요하지 않고, 할머니 기도에서 원하는 것이 없지만, 기도의 목적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들에서 찾을 수 있는 목적은 세속의 목적과 같이 상황에 따라서 변화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생이 시작할 때부터 주어져 있어서 의심 없이 받아들여진 목적이다. 그것은 선함과 악함을 구별할 줄 알고, 사람을 존경하고,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중시하고, 거짓되게 행동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 삶에는 목적이 있는 순례와 목적보다 과정에 충실한 순례 두 가지가 있다. 어떠한 길을 갈 것인지는 우리가 선택할 일이고, 그 가치도 우리가 부여할 일이다. 그러나 부처님이나 하느님 앞에서 빌 것이 없이 그냥 절하고 기도하는 세상이 됐으면 한다. 있는 그대로 그 자체가 아름답고 행복했으면 한다. 몸과 마음이 가난한 사람이 없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 억울함이 없고, 질병의 고통과 질투의 분노가 없어서 그냥 걷고 절하는 순례길의 인생과 세상이기를 부처님 오신 날을 앞두고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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