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숙 수필가

 

아이 키우기가 전쟁이다.

요즘은 대부분이 맞벌이를 하다 보니 육아가 말 그대로 전쟁이다.

그 몫을 고스란히 할머니들이 떠맡게 되었다. 아들 딸 출가 시키고 좀 한가해 질만 하니 손자들을 데려와 안긴다.

요즘 내 또래들은 모여 앉으면 화제가 손자 돌보기다.

의견도 분분하다.

힘들지만 봐줘야한다는 의견이 있고 야박 한 것 같지만 아예 맡지를 말아야 한다는 의견이 팽팽하다.

정답은 없다. 나라면 어떻게 할까?

2년 전 결혼한 딸은 아직 아기 소식이 없다. 하지만 농담반 진담반 아기를 낳으면 엄마한테 맡기겠단다. 설령 현실이 된다 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만 걱정이 되는 것은 사실이다.

운동모임에 선배언니는 결혼한 아들을 분가 시키지 않고 함께 산다. 친정 엄마까지 3대가 한집에 살면서 집안 살림에 육아까지 도맡아 한다.

이미 환갑을 넘긴 나이지만 여섯 식구 살림도 만만치 않은데 손녀딸 돌보기까지 하니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이미 자신의 생활이 없어진지는 오래됐다.

누구보다도 건강했던 사람이었는데 요즘은 병원을 제집처럼 드나든다. 주변사람들은 분가를 시키지 왜 같이 데리고 그 고생을 하냐고 한다. 그런데 그 선배 하는 말이 몸은 죽을 만큼 힘든데 막상 아이들이 분가를 한다고 하면 많이 서운할거 같은 생각이 든다고 했다.

몸은 힘들지만 적적하고 외로운 것보다는 왁자지껄 사람 사는 느낌이 들어 불만은 없단다.

우리 아파트에 사는 다른 선배 언니는 딸을 옆 동으로 이사시켜 손자 둘을 돌보고 살림을 살펴준다.

기업체에 근무하는 딸은 잦은 출장과 야근으로 도우미를 쓰면서도 아침 이른 시간과 밤늦은 시간의 육아는 친정 엄마 몫이다.

아침 일찍 국 냄비를 들고 마주치기도 하고 다린 셔츠를 들고 마주치기도 한다. 징징대는 아이를 달래가며 어린이집으로 데리고 가는 선배의 뒷모습은 언제나 지쳐 보인다.

10여년이 지난 지금은 지칠 대로 지쳐 예쁘던 모습은 간데없고 삶에 지친 70대 노인의 모습으로 변해 버렸다. 짬이 나는 오전 시간엔 정형외과로 내과로 전전하기 바쁘고 몸이 그러하니 좋아하던 운동도 여행도 생각할 수조차 없고 유일한 낙은 손자들의 재롱이란다. 그 모습이 힘들면서도 놓을 수가 없는 이유가 되기도 한단다.

“정숙씨 지금이 제일 좋을 때다. 딸 결혼 시키고 아이 낳아 데려와 맡기기 전까지가 제일 행복할 때야 여행도 많이 다니고 자신을 위한 시간 많이 보내. 난 이제 그런 날이 오기는 틀린 것 같아. 설사 한가해진다 해도 이제는 체력이 따라 주질 않을 것 같아”

그 선배언니는 나랑 마주 칠 때마다 같은 얘기를 반복한다.

“언니 야박하더라도 그냥 제 엄마 아빠한테 맡기고 손 떼세요. 언니 몸도 안 좋으신 대”하고 위로 아니 위로를 한다.

하지만 그 언니인들 그런 갈등을 안 해 봤을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친정 엄마가 집에서 놀면서 아이가 하루 종일 어린이집에서 긴긴 시간 엄마 아빠를 기다리게 하는 게 안쓰러워 자신이 희생하고 만다고 한다.

나라도 백번 그러고 남을 것이다.

내가 대학을 선택 할 때 만 해도 여자들은 취업보다는 현모양처가 되는 게 꿈이었다. 결혼 잘 해서 아이 낳아 잘 키우고 남편 뒷바라지하며 집안 살림 하는 게 여자의 역할이었다.

취업을 한다 해도 전문직이 아니면 대부분 결혼과 동시에 퇴직을 했다.

공무원이던 친구는 결혼 하면서 직장을 나왔다. 그때는 그게 당연한 것처럼 생각됐는데 지금 세상을 기준으로 생각해 보면 참 어이없는 일이라고 했다.

나 또한 내 아이가 아파트 열쇠를 목에 걸고 다니는 게 싫어서 하던 일을 그만 두고 전업주부가 됐다. 지금 생각해도 후회는 없다.

하지만 요즘 젊은 세대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맞벌이가 아니면 집 하나 장만도 쉽지 않다. 물론 능력 있는 부모를 만나 맞벌이를 하지 않고도 생활해 나갈 수 있는 사람은 예외겠지만….

부모들이 자신의 생활을 빼앗기고 몸이 병들어 가면서도 손자 육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내 자식을 금수저로 낳아 주지 못한 미안함도 한 부분 차지하고 있다.

두 선배언니들을 보면서 머지않아 나에게 닥칠 시간들을 각오한다.

어떤 것이 최선일지 여전히 정답을 찾지 못한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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