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성진 청주 흥덕구 세무과 주무관

 

푸릇푸릇한 봄기운이 완연하고 가족, 연인과 함께 봄나들이가 한창이라 주말에도 쉴 틈이 없는 4월을 지나, 봄날과 함께해 더욱 풍성하고 행복한 5월 가정의 달이 성큼 다가왔다. 항상 이맘때쯤이면 부모님을 더 생각하게 된다. 그동안 잘할 수 있을 거라 수없이 다짐하지만 맘처럼 쉽지 않은 것이 효도인 것 같다.

조만간 아이가 태어날 예비 아빠가 돼보니 부모의 마음을 아주 조금이나마 알 수 있을 것도 같다. 지금의 부모님 세대들은 아마도 대부분 자식들을 뒷바라지 하느라 먹을 것 못 먹고 입을 것 못 입고 그렇게 일만 하셨을 것이다. 하지만 나이 들어 몸도 성치 않으신데 자식들은 다들 자기 살기 바쁘다고 제대로 찾아뵙지도 않는 것이 현실이다. 물론 바쁜 현대인의 삶을 나무랄 수는 없는 일이다. 대신 두둑이 용돈을 넣어드리는 것으로 스스로 위안을 삼기도 한다.

사실 효(孝)라는 회의문자는 원래 ‘자식(아들)이 부모(노인)를 업고 있는 모습’으로 풀이돼 있다. 유교사상에서 강조하는 효는 부모에 대한 물질적 봉양보다는 부모를 섬긴다는 것, 즉 부모의 명을 받들어 부모를 위해 힘쓴다거나 부모의 뜻을 거스르지 않고 공경과 예의를 다해 모신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부모에 대한 그 섬김의 마음이 약해졌다고 할 수는 없으나 요즘에 와서는 물질적 봉양이 오히려 서로에게 부담을 주지 않아서 더 편한 효의 방법으로 여겨지고 있는 것 같다.

한편 효와 관련된 고사성어로 중국의 고전인 ‘한시외전(韓詩外傳)’에 ‘풍수지탄(風樹之嘆)’이란 말이 있다. 공자가 자기의 뜻을 펴기 위해 이 나라 저 나라로 떠돌고 있을 때였다. 그날도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는데 어디선가 슬피 우는 소리가 들려 왔다. 울음소리를 따라가 보니 곡성의 장본인은 고어(皐魚)라는 사람이었다. 공자가 우는 까닭을 묻자 울음을 그친 고어가 이렇게 말했다.

“저에게는 세 가지 잘못한 일이 있습니다. 젊어서 집을 나가 공부하고 제후들을 찾아다니다가 나중에 고향에 돌아가 보니 양친께서는 이미 세상을 떠나셨는데, 이것이 첫 번째 잘못입니다. 저의 뜻을 지나치게 고상히 하다 보니 군주를 섬기는 일을 소홀하게 됐는데, 이것이 두 번째 잘못입니다. 친구와 본디 친밀하게 지냈으나 점차 관계를 소원히 했으니, 이것이 세 번째 잘못입니다”

고어는 한숨을 쉬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나무가 고요히 있고자 하나 바람이 그치지 않고, 자식이 봉양을 하고자 하나 부모는 기다려 주지 않습니다.(樹欲靜而風不止, 子欲養而親不待). 한번 떠나가면 다시 오지 않는 것이 세월이고, 돌아가시고 나면 다시는 뵙지 못하는 것이 부모님이십니다. 저는 이제 세상을 하직할까 합니다”

말을 마친 후 고어는 자리에 선 채로 미동도 하지 않고 있다가 마침내 말라 죽었다고 한다.

우리 모두가 꼭 기억해야 할 중요한 깨달음이다. 부모님이 주시는 현재의 사랑을 너무 당연하게 생각하지 말고 더 늦기 전에?많이 표현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며, 부모님이 서운해 하시지 않도록 그동안 받았던 사랑에 대한 충분한 보답을 해드려야 할 것이다.

시간과 기회가 부족하다고 효도를 못하는 것은 아니며 부모에 대한 공경과 사랑의 마음이 변하거나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 마음만 충분하다면 시간과 장소가 중요하겠는가? 시간이 부족하고 멀리 떨어져 있다 해도 따뜻한 말 한 마디와 안부 전화 한 통이 그 어떤 물질적인 보답보다 더 값진 마음으로 전달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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