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가

아침을 이슬로 배부르게 먹고 후식으로 달콤한 새소리를 마신다. 고구마의 하루가 시작된다. 흰 눈이 펑펑 쏟아지는 날 창밖을 응시하며 앉아 세월을 먹는다. 지독히 가난에 쪼들리던 시절 허기진 배를 움켜잡고 한입 베어 먹고 동치미 국물 한 모금 마시던 그때를 생각하며 고구마의 추억을 되새긴다. 동치미를 대신해 따스한 차 한 잔과 흘러온 세월을 먹고 있다.

주문한 고구마싹이 도착했다. 차에 싣고 아내와 함께 밭으로 갔다. 이랑에 비닐을 덮고 싹을 심기 시작했다. 아내는 막대를 사용해 싹을 꽂아 놓고 나는 포기마다 물을 준다.

더위에 땀이 쭈르륵 흐른다. 다 심고 바라보니 제법 푸릇푸릇한 밭이 아름답다. 황량하기만 했던 밭이 푸른빛이 감싸주니 생명감이 살아난다. 이제 심어주었으니 자라서 고구마를 맺는 일은 너희들 몫이다 하며 집에 돌아왔다.

얼마의 시간이 흐르고 밭이 궁금하여 가보았다. 활착이 잘되어 제법 자라 있었다. 입과 줄기가 뿌리의 양분을 받아 잘 자라고 있다. 이 시기엔 뿌리에서 양분을 올려준다. 그러다 어느 정도 성장하면 고구마가 달리고 이때부터는 잎이 동화작용을 해 양분을 고구마로 내려준다. 가뭄이 들면 새벽에 내리는 이슬로 근근이 버텨나가며 힘들게 자란다.

땅속의 고구마는 잎의 어려움을 알지 못하고 시원한 땅 속에서 잘 먹으며 둥글둥글 자란다. 이솝우화의 개미와 베짱이를 생각나게 한다. 고구마와 줄기가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자라간다 그래도 고구마가 성장하며 맛을 들일 때쯤이면 예쁜 꽃도 피운다.

가을이 되면 잎은 서리를 맞아 사그라지면 줄기를 자르고 고구마를 캔다. 예쁜 고구마가 불거져 나온다. 고구마는 처음 마주하는 해를 보며 따갑고 눈부시다 투정 한다. 금세 햇볕에 그을린다. 이제야 잎의 여름나기를 조금 이해하는 듯하다. 햇볕에 수분을 증발시키고 저장고로 운반되어 후숙에 들어간다. 반성의 시간을 갖는다. 잎이 사라진 고구마는 늦게까지 홀로 남겨져 즐길 거리를 제공해주고 있다. 잎이 뜨거운 여름날을 고생하며 키워줄 때 고마움을 모르고 땅속에서 유유자적하며 지내던 대가를 추운 겨울까지 홀로남아 먹거리를 제공해주고 있다.

겨울밤 고구마를 먹으면 생각나는 친구가 있다. 집이 가난하고 학교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어, 아침을 먹지 못하고 뛰어와 수업시간에 고구마를 먹다 선생님께 발각되어, 먹던 고구마를 입에 물고 침을 줄줄 흘리며 벌을 받던 친구다. 그런 잊혀져가는 시간을 되돌려주는 고구마다.

나를 도와 고생하는 가족이다. 함께하는 친척과 이웃을 느끼며 살아야 한다. 고구마와 줄기가 달리 생각하고 살아가듯, 내가 잘나 성공하고 잘 살고 있다는 생각을 하기 전에 나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도록 함께해준 사람들의 고마움을 먼저 깨달아야 한다. 독불장군은 없다. 서로 돕고 협력하는 자세가 갖추어져야 한다. 고구마에게 배려를 일깨워 주어야 하겠다. 어려울 때 나만 아니면 되지 하는 생각을 버리고 함께 극복하는 동료애를 가져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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