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번역가

화목(和睦)이란 본래 칼을 품고 있지 않은 두 사람이 온유한 자세로 즐겁게 음식을 먹으며 관련된 대화를 툭 터놓고 나누는 것을 뜻한다. 즉 전쟁이 없는 평화 상태를 말한다. 이후 수 천 년이 지나 현대에 이르러서는 그 의미가 약간 변모하였다. 윗사람이 부드럽고 다정하게 아랫사람을 정성껏 보살펴준다는 뜻으로 쓰이게 되었다.

1005년 북송(北宋) 무렵, 장영(張詠)은 세계 최초로 종이 화폐를 발명한 사람이다. 그가 오늘날의 행정자치부 장관에 해당하는 이부상서(吏部尙書) 벼슬을 할 때였다. 그 직위는 그 무렵에 실로 위세와 권한이 대단한 자리였다. 하루는 장영이 평소와 같이 조정업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정문에 들어서자 하인들이 정신을 바짝 차리고 각자 일에 열중이었다. 그 모습을 본 후에 갑자기 장영은 혹시 뒤채를 지키는 문지기는 어떻게 하고 있나 궁금해서 발길을 돌렸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뒤채를 지키는 문지기가 바닥에 주저앉아 코를 펑펑 골며 자고 있는 것이 아닌가. 수행원들이 황급히 다가가 문지기를 깨우려 하자 장영이 그만 두라고 손짓했다. 그러자 문지기가 상황을 인식했는지 눈을 뜨고는 크게 당황하는 것이었다. 장영이 조용히 다가가 차분하게 물었다.

“어찌 그리 곤하게 잠을 자고 있는 것이냐? 혹시 자네 건강이 안 좋은 것은 아니냐? 아니면 자네 집에 무슨 일이라도 있는 것은 아니냐?”

문지기가 어쩔 줄 몰라 머뭇거리더니 그만 슬피 울먹이며 대답하였다.

“보름째 어머니가 아파서 누워계십니다. 아버지는 전쟁터에서 돌아가시고, 형은 집을 나간 지 오래됩니다. 저는 아직 결혼도 못한 상태라 혼자서 어머니를 보살피다보니 그만 고단해서 깜박 졸았습니다. 용서해주십시오!”

장영이 그 말을 듣더니 시종관을 불렀다.

“너는 지금 당장 저 문지기가 한 말이 사실인가 확인하도록 해라!”

시종관이 돌아와 보고하는데 문지기의 말이 모두 사실이라고 하였다. 이어 장영은 서둘러 수행 비서를 불렀다.

“너는 당장 문지기의 어머니를 보살필 사람을 찾아 보내도록 하라. 그리고 병이 치유될 수 있도록 양식과 고기를 넉넉히 보내도록 하라!”

그날 밤 문지기가 집에 돌아와서는 너무 놀라고 너무 감격하여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날 이후로 누구보다 성실히 일을 하였다. 몇 년이 지난 후에 장영은 이 일에 대해 부하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누가 감히 내 집 뒤채에서 잠을 잘 수 있겠는가? 그런데도 문지기가 잠이 든 것은 분명 연유가 있다고 여겼기 때문에 내가 물은 것이다.”

이는 ‘송사(宋史)’에 있는 이야기이다. 상원하추(上援下推)란 윗자리에 있는 사람은 열심을 다해 아랫사람을 끌어올리고, 아랫사람은 그런 윗사람을 진심으로 추대한다는 뜻이다. 화목의 본질을 가장 적절히 표현한 말이라 하겠다. 그러니 조직의 수장이나 기업의 총수라면 아랫사람을 부리기보다 그들을 살피고 돕는 것이 우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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