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단오절 대궐 잔치에 청풍의 산물을 공납하다

사월 그믐까지는 북진나루에 배가 당도할 테니 차질 없이 공물을 선적할 수 있도록 모든 준비를 끝내라는 충주 윤 객주 상전으로부터 전갈이 왔다. 다시 내려온 물목에는 공물의 가짓수와 양도 늘어나있었지만 각 품목에 대한 품질·상태·물건을 꾸리는 방식까지 까다롭게 적혀있었다.

임금님이나 이름만 들어도 팔도에 뜨르르한 고관대작들이 대궐에 모여 벌이는 잔칫상에 올라갈 음식이니, 여느 백성들 밥상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청풍에서 맡은 품목만 해도 그랬다. 산나물의 빛깔·식감·길이, 강에서 나는 민물고기와 날짐승의 크기·굵기·무게는 물론 눈깔의 색까지 세세하게 주문했다. 고기는 고사하고 거칠고 질긴 나물조차도 없어 배를 채우지 못하는 백성들 처지에서는 기가 찰 일이었지만, 그것에 대해 달리 억한 감정을 가지는 사람은 없었다.

대궐에 있는 분들이나 양반들은 자신들과는 전혀 다른 사람들이기에 그런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분들을 위해 자신들이 허리띠를 졸라매는 것도 타고난 운명으로 생각했다.

사월 그믐이면 채 한 달도 남지 않은 기간이었다. 한 달 사이에 할당받은 공물을 공납하려면 그리 넉넉하지 않은 시간이었다. 추수해 곳간에 쌓아놓은 곡물이나 만들어져있는 물건이라면 꾸리기만 하면 될 일이었지만, 청풍에서 바쳐야 할 공물은 전부가 생물이었다. 사람들이 직접 산과 들로 나가 따고 꺾는 것도 일인데 주문에 따라 일일이 검사하고 규격에 맞추고 다듬어야 하는 일이었다. 필요한 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북진본방만으로도 힘에 겨운 일이었다. 각 임방주들의 도움이 절실했다. 

“비호와 왕발이를 오라고 하거라!”

최풍원의 부름을 받고 두 사람이 본방채로 달려왔다.

“대주, 부르셨습니까?”

“들어오너라!”

두 사람이 방안으로 들자 최풍원이 부른 이유를 말하기 시작했다.

“왕발아, 너는 지금부터 각 임방을 돌며 그 동네에서는 요즘 어떤 산물들이 많이 나오고 있는지 양은 얼마나 되는지 자세하게 알아오도록 해라. 그리고 사월 중순까지는 여하한 사정이 있어도 맡은 물량을 확보해놔야 한다고 임방주들에게 전하거라. 임방 순례가 끝나거든 덕산 수염쟁이 약초꾼을 찾아가 내가 수일 내로 당도할 테니 말린 황기 최상품으로 이백 근을 준비해놓으라고 전하거라. 그런 다음 월악 송계로 넘어가면 버들장수가 있을 것이다. 그 버들장수를 찾아가 네모진 싸리 바구니 삼백 개를 만들어 놓으라고 하거라.”

“싸리 바구니는 뭘 하려고 삼백 개씩이나 필요하대유?”

“다 필요한 곳이 있어 그러하는 것이니 너는 쓸데없는 걱정일랑 말고, 가다가 잊지 말고 단단히 전하거라! 알겠느냐?”

박왕발이의 물음에는 답변도 하지 않고, 최풍원은 자신의 할 말만 하며 당부만 거듭했다.

“알겠슈!”

비호 앞에서 최풍원 대주가 자신을 무시한다고 생각해서인지 박왕발이 표정이 썩 좋지는 않았다.

“비호는 단양 조산촌을 다녀와야겠다!”

“조산촌이 어딘가요?”

비호가 단양은 알지만 조산촌은 생소한 지라 최풍원에게 물었다.

“대주, 왜 저에게는 이리도 많은 일을 시키고 비호 형님에게는 하나만 시키십니까? 조산촌 지리는 제가 잘 아니 저와 바꿔주십시오!”

최풍원이 거듭 자신만 차별하는 것 같아 박왕발이는 심사가 몹시 뒤틀렸다.

“비호는 조산촌을 거쳐 영월 임방으로 해서 죽령 너머 풍기까지 갔다와야하는데, 그럼 왕발이가 그 일을 하려느냐?”

“예에! 아이고 싫습니다!”

박왕발이가 못하겠다며 뒤로 벌러덩 넘어졌다.

“강원도와 경상도까지요?”

박왕발이처럼 청풍 인근에 기별을 전하면 될 것으로 알았던 비호도 최풍원의 말에 놀라는 기색이 역력했다.

“비호는 조산촌에 들려 차익수 임방주를 만나 근황을 물어보고 두출이 형님에게 들려 귀한 산채와 약초들을 준비해 놓으라고 하거라. 본방으로 옮기는 문제는 따로 연락을 줄 테니 걱정말라  전하고. 그리고 영월 성두봉 임방주와 풍기 천용백 피륙상을 찾아가 이 물목을 천기출 약재상에게 전해주라 하거라!”

최풍원이 물목을 적은 종이를 비호에게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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