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님 뜻대로 따르겠습니다! 그런데 저 동생들은 어찌합니까?”

도식이가 최풍원의 제안에 전적으로 동의했다. 그러면서도 이제껏 거친 장마당에서 동고동락했던 무뢰배 동생들이 걱정되는 눈치였다.

“그것도 걱정하지 말게. 너희들 역시 나이가 들어서도 언제까지 이 거친 일을 하면 살 수는 없을 것 아니냐? 동몽회 자격은 열여덟 살까지로 하고, 그 전이라도 혼사를 올리면 그만 두도록 해라.”

최풍원이 무뢰배 동생들에게 말했다. 녀석들은 덩치만 크고 겉모습만 우락부락할 뿐이지 애들은 애들일 뿐이었다. 잔치가 벌어지고 있는 장마당에 차려진 목로에 둘러앉아 차려진 음식을 먹으며 저들끼리 희희덕대기만 할 뿐 저들 앞날이 어찌 되려는 지에는 조금의 관심도 없었다.

“그럼 그 이후에 우리는 어찌 됩니까?”

택견을 하던 강수였다. 다른 녀석들과는 달리 강수만은 최풍원의 이야기를 듣고 성년이 되어 동몽회를 나와야 되는 이후의 일에 대해 물었다.

“동몽회가 끝나면 각자의 뜻에 맡기도록 하겠다. 북진본방에 계속 남아 일을 하고 싶다면 함께 장사일을 하게 될 것이고, 고향으로 돌아가 농사를 짓겠다고 하면 얼마간의 돈을 마련해줄 것이니 알아서 땅을 장만 하거라!”

최풍원이 강수의 물음에 대답을 했다.

“그렇다면 큰형님의 뜻을 받들어 오늘부터 온 힘을 다해 일하겠습니다.”

강수가 최풍원에게 충성을 다짐했다.

“너희들도 큰형님께 맹세를 하거라!”

도식이가 다른 무뢰배들에게도 충성 맹세를 요구했다.

“큰형님 뜻을 따르겠습니다!”

무뢰배들이 일제히 합창을 했다.

“이제 지난날 과오는 모두 털어버리고, 북진본방의 일원으로서 장마당 질서를 유지하고 상계 발전을 위해 모든 힘을 쏟아야 할 것이다. 그러면 너희들의 뒷일은 내가 모두 책임질 것이다. 그리고 당분간 동몽회 대방은 도식이가 맡아주기 바란다. 이제 지금부터 여러분들은 북진본방의 동몽회 회원이다!”

최풍원이가 동몽회의 출범을 알렸다. 모두들 기뻐서 질러대는 환성 소리에 북진장터가 들썩들썩했다. 그러고도 잔치는 한밤중까지 계속되었다.

북진본방 대주 최풍원과 무뢰배 대방 도식이와의 싸움 이후 북진을 드나드는 장사꾼들 사이에서 최풍원은 애기장수로 통했다. 이미 최풍원은 성년을 넘긴 나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풍원이 애기장수로 불리게 된 것은 작달막한 키 때문이기도 했지만, 청풍장 인근 장을 떠돌며 거들먹거리던 무뢰배의 대방을 도식이를 제압하여 자신의 휘하로 만든 사건으로 인해서였다. 이 사건은 청풍장은 물론 인근 향시까지 삽시간에 퍼졌고, 북진본방과 최풍원의 존재를 알리는데 큰 역할을 했다.

강바람이 순해졌다. 계절만 그리 바뀐 것이 아니었다. 봄이 점점 무르익으며 산천이 푸르러지자 겨울나무처럼 바짝 웅크리고 있던 사람들 마음도 점점 풀어졌다. 가뭄에 콩 나듯 낱알 구경은 어려워도 들에 나갔다오면 나물죽이라도 배불리 먹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사람들 마음이 풀리니 북진난장도 더더욱 활기를 띄었다.

처음에는 춘궁기에 배를 곯고 있는 힘겨운 고을민들을 위해 구휼미를 나눠주려고 시작했던 일이었다. 물론 어려울 때 도와줌으로써 고을민들의 인심을 얻어 장차 북진본방의 장사에 득을 얻고자하는 속내도 있었다. 그러나 북진본방도 기아에 허덕이는 고을민들 못지않게 어려움에 처해있었다. 그럼에도 최풍원은 고을민들에게 구휼미를 풀었다. 물론 충주 윤 객주 상전과 각 임방주들의 도움이 없었으면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자 구휼미를 받으려고 사람들이 모여 들고 서로들 필요한 물건을 구하며 자연스럽게 하나둘씩 장사가 생겨났다. 그것이 북진난장의 시발점이 되었다. 사람들이 몰리며 요기를 하기 위해 주막이 생겨나고 필요한 물건들도 점점 늘어나자 난장이 커지고 북진나루에 처음으로 경강선이 닻을 내렸다. 경강선이 왔다는 소문에 사람들은 백지알처럼 모였고, 마침내 난장이 틀어졌다. 북진이 생긴 이후 난장이 틀어진 것도 처음 있는 일이었다. 난장이 틀어지자 산지사방에서 온갖 사람들이 북적이며 도식이의 무뢰배들과의 사건도 벌어지게 되었다.

북진난장은 어느새 달포가 지나도록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임방주들도 구휼미 분배가 끝나고 북진난장이 어느 정도 안정되자 각자의 임방으로 돌아갔다. 그 자리를 동몽회 회원들이 맡아 장 관리를 해나갔다. 북진도 점점 장이 자리잡혀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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