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번역가

조조(曹操)는 후한(後漢) 말기의 승상이다. 이후 자신의 지지 기반을 넓혀 위(魏)나라 건국의 기초를 닦았다. 특히 인재를 등용하고 그들의 재주를 실현하는 용인술이 아주 뛰어나 천하의 패권을 움켜쥐었다. 그 아들 조비(曹丕)가 위나라 황제에 오르면서 무황제(武皇帝)로 추존되었다.

원소(袁紹)는 후한(後漢) 말기의 장군이다. 집안이 4대에 걸쳐 삼공(三公)의 지위에 오른 명문 귀족 출신이다. 젊어서는 의롭고 용맹하여 정치적 부패의 요인인 환관들을 제거하는데 앞장섰고, 동탁의 권력 전횡에 대항하였다. 이후 하북(河北) 지역을 중심으로 세력을 구축하였다.

천하의 패권을 노리던 조조는 원소가 날로 세력을 확장하자 걱정이었다. 이러다가는 자신의 기반이 흔들릴지도 모를 처지였다. 참다못해 드디어 부하들에게 군대 출정을 명하였다. 우선 원소의 부하 고간(高干)이 지키는 호관성(壺關城)을 포위하였다. 며칠을 쉬지 않고 공격했으나 좀처럼 성에 오를 수 없었다. 도리어 조조의 군사들만 다치거나 죽기 일쑤였다. 뜻대로 되지 않자 조조가 울화통을 터뜨리며 부하들에게 말했다.

“저 성을 함락시키고 나면 성 안의 살아있는 것은 모조리 산 채로 묻어버려라!”

호관성의 병사와 백성들이 이 말을 전해 듣자 모두 두려워 떨었다. 이제는 어차피 죽기는 마찬가지이니 죽기를 각오로 성을 지키겠노라고 결의를 다졌다.

다시 조조의 군대가 공격을 시작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역시 적의 필사적인 방어로 인해 성은 조금도 무너질 기세가 보이지 않았다. 도리어 지난 번 공격보다 필사적으로 대항하니 조조의 병사들이 오히려 죽거나 다치는 경우가 더욱 많았다. 그러자 조조 진영은 침체되었다. 이때 장수 조인(曺仁)이 조조에게 책략을 건의했다.

“지금 저들이 저렇게 죽을힘을 다해 성을 사수하고 있는 것은, 성을 사방으로 포위하여 도망칠 길을 막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 우리가 이후 성을 점령하면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을 산 채로 묻어 버리겠노라고 장담하셨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호관성은 견고하고 성안에 식량도 충분히 비축되어 있어 무턱대고 공격하다가는 우리 군의 손실만 막대할 따름입니다. 그러니 적을 포위할 때는 활로를 하나 정도는 남겨두는 것이 아군에게 유리합니다.”

조조가 가만 생각해보니 참으로 옳은 말이었다. 이 건의를 받아들여 성 뒤쪽을 막고 있는 군사들을 곧바로 철수시켰다. 그러자 지금껏 목숨을 걸고 성을 지키고 있던 원소의 백성들과 군사들이 몰래 하나둘 뒤로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그 대열이 점차 늘어가자 성 안은 일대 혼란에 빠지고 말았다. 조조가 이 틈을 놓치지 않고 공격하자, 호관성은 일격에 함락되고 말았다. 이는 ‘삼국지’에 있는 이야기이다.

위사필궐(圍師必闕)이란 적을 포위할 때는 반드시 도망갈 구멍을 남겨두어야 한다는 뜻이다. 막다른 길에 이르게 되면 아무리 약자라도 죽기 살기로 싸우기 마련이다. 그러면 강한 자가 이긴다고 해도 상처가 클 수밖에 없다. 운이 나쁘면 패할 수도 있다. 그러니 강한 자가 약한 자를 공격할 때면 반드시 도망갈 길을 열어주어야 승패를 확실히 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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