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보영 수필가

 

봄 산이 청정하다. 봄의 전령사들이 겨울의 끝자락을 훠이훠이 몰아내고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고 있다. 생명의 용트림을 통해 무한한 변신을 꾀하고 있는 대지 위로 바람과 햇살이 넘나든다. 지난가을 떨켜 끝자리에 돌아 올 봄을 위해 돋아나 모진 눈보라를 견뎌낸 잎눈과 꽃눈들이, 꽃으로 잎으로 피어나 온 산야를 물들이고 있다. 무채색으로 어두웠던 대지 위에 색을 입히고 있는 중이다.

무채색에서 유채색으로 변신을 시작한 생명 있는 것들의 조용한 함성이 오감을 흔들어 깨운다. 바람이 실어다 주는 싱그러운 향내에 취해 눈을 감는다. 바지직 바지직 여린 잎들이 깨어나는 소리, 꽃잎 벙그는 소리에 심장이 요동친다. 일상의 탈출을 부추겨댄다. 못이기는 척 바람을 따라 나선다. 아무 준비 없이 무작정 나서는 길. 어디로 갈까. 남쪽에는 이미 산수유도 만개하고 벚꽃도 흐드러졌다는데 그리로 가 볼까. 아니면 ‘화엄사’ 홍매님을 만나러 갈까. 설렘을 한 아름 안고 어디로든 발길 닿는 대로 가보는 것도 좋겠다. 마음 가는 대로 무심히 나선다는 것. 무심히 나선 곳에서 때로는 예기치 않은 것들과 만나 감동하고 더러는 숙연해지기도하고.

길을 가다 무심코 들린 길손들의 쉼터 한 옆 자그마한 동산 위에 발길이 머문다. 그분을 뵈올 수 있는 행운을 누리게 되어 설렌다. 검푸른 나뭇가지마다 연초록으로 돋아나는 새순들을 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가슴 뛰는 일인데 잠시나마 임의 작품 속으로 들어가 임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보며 깊게 공감하고 사유할 수 있음에 눈물이 난다. 두루마기 자락을 휘날리며 고고히 서 있는 생전의 모습이 담긴 석상과 더불어 점점이 놓여 있는 시화(詩畵)들이 발길을 잡고 놓지 않으니 어찌할까.

귀히 자란 몸에 정주도 모르다가/이 집에 들어오며/물 긷고 방아 찧고/잔 시늉 안 한일 없어 잔뼈도 굵었다/ 맑은 나의 살림 다만 믿는 그의 한 몸/몹시 섬약하고 병도 또한 잦건마는/그래도 성한 양으로 참고 그저 바구어라/ 나이 더하더라도 마음이야 다르던가/백 년 동안이 마나던 그날 같고/마주 푼 귀영머리 나보다 검어라/ 이미 맺은 인연 그대로 잇고 이어/다시 태어나되 서로 바꾸이 되어/ 이생에 못다 한 정을 저 생에서 받으리.<가람 이병기님의 시조 ‘처’전문>

가야할 때가/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뒤 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봄 한철/격정은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분분한 낙화/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쌓여/지금은 가야할 때/무성한 녹음과 그리고 머지않아 열매 맺는/가을을 향하여/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헤어지자 섬세한 손길을 흔들며/하롱하롱 꽃잎이 지는 날/샘터에 물고이듯 성숙하는/내 영혼의 슬픈 눈/ <‘낙화’ 전문>

아쉬움을 뒤로하고 쉬엄쉬엄 달려 도착한 곳. 섬진강변이다. 봄이 왔다고, 일철이 되었다고, 주변 들녘엔 일손들이 바쁘다. 이제 막 밭갈이를 해 놓았는가. 물기 머금은 촉촉한 흙이 너무 부드러워 보여 찰진 인절미 한판 이리저리 뒹굴려가며 묻혀도 좋으리라싶다. 이제 곧 농부의 마음 따라 씨앗이 심겨질 게다. 푸르게 자라 알차게 영글어 심은 이의 기쁨이 되어 주면 참 좋겠다.

저 멀리 아스라이 보이는 둥구나무 근처에 ‘김용택’ 시인의 생가가 있단다. 섬진강에 오면 꼭 들려보고 싶었던 곳. 집안에 들어서니 잔디가 곱게 깔린 마당을 감싸고 있는 예스러운 돌담이 정겹다. 시인의 집 툇마루에 걸터앉아 시인이 하던 말을 떠올린다. 바람이 불어 강 건너 앞산의 은사시나뭇잎이 아래에서 위로 젖혀지는 걸 보니 비가 올 것 같다는 어머니의 말을 글로 썼더니 시가 되더라는. 시는 그렇게 자연을 사랑하고 그들과 이야기하기를 즐겨하면 된다는. 나는 어느 때가 되어야 자연의 이치를 깨달아 누군가의 마음에 닿는 글 한 편을 쓸 수 있을까. 주인 없는 집에 시를 사랑하여, 당신을 기억하여 다녀가는 이들을 위해 마련해 놓았는가. 그의 마음이 담긴 차 한 잔이 정겨워라.

마음 가는 대로 가고자 나선 길이니 이제 지리산 노고단으로 가 볼까. 지난 가을 그를 만났을 때 오색 창연한 그의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 가슴은 두방망이질치고 차마 발길을 돌리기 아쉬워 머뭇거리다 길손들의 쉼터에 찾아들어 하룻밤을 보냈었는데. 오늘은 또 어떤 모습으로 우리를 맞이할까.

흐드러진 벚꽃 터널을 지나 굽이굽이 돌아가니 여린 초록의 물결이 일렁인다. 화살나무며 생강나무 황벽나무도 있고 각종 이름 모를 나무들이 검푸른 수피를 뚫고 여린 잎을 피워 올리고 있다. 초록 중에 가장 아름다운 빛깔로, 아찔한 싱그러움으로 다가온다. 언제 피어났는가. 크고 작은 나무들 사이로 진달래꽃이 붉다. 창문을 연다. 심호흡을 한다. 봄을 숨 쉰다. 바람에 전신을 내 맡긴다.

성삼재에 올라 주변의 산야를 돌아본다. 산자락마다 뭉게구름이 인다. 아직은 때가 아니라며 잎이나 꽃을 피워 내지 않는 것들과 때를 알고 피어난 것들이 어우러져 조화롭다. 일찌감치 찾아 온 남도의 봄을 만끽하기 위해 분주히 오가는 상춘객들의 발길이 분주하다 저들을 보며 생각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자연이 제 속도에 맞추어 피어나듯 우리의 삶의 속도도 늦추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우리는 어쩌면 늘 어디론가 서둘러 가려하는 지도 모른다. 그 사이 삶의 소중한 것들을 잃어버리기도 한다. 때를 알고 천천히 흘러가는 자연의 아름다운 순간을 기억하고 싶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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