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청주예총 부회장

필자가 거주하고 있는 저장성에 이웃한 안휘성은 유유히 장강(長江)이 흐르고, 황산 등 명산들이 즐비하다. 산수가 수려한 만큼 훌륭한 인물들이 많이 배출돼 유명하다. 현대 중국을 이끌었던 등소평, 강택민, 호금도 등 기라성 같은 인물이 모두 이 지방 출신이다. 지난 주말에는 1박2일 일정으로 산이 웅장하고 수려해 한무제(漢武帝)가 친히 참배했다는 ‘천주(天柱)산’을 다녀왔다.

집 떠나면 고생이라고 한다. 그래도 여행을 떠난다. 여행에는 꿈과 낭만이 있다. 그러나 꿈과 낭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여행 중에는 위험도 뒤따른다. 돌발적인 상황으로 말미암아 사소한 스트레스에서부터 큰 사고를 초래하기도 한다.

기암절벽과 폭포가 즐비한 계곡을 걸으며 ‘힐링’을 만끽하고 나서 하룻밤을 묵을 호텔에서 문제가 생겼다. 방에 들어가자마자 냄새가 어찌나 지독한지! TV를 켜보니 고장이요, 목욕탕에 들어가니 고장이라서 샤워도 못하겠다. “아무래도 그동안 사용하질 않았던 방 같아요!”라고 아내가 말한다. 나 혼자만 같아도 참고 하룻밤을 묵겠지만, 아내에게 미안하고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문득 ‘한국인이라고 차별한 것 아닌가?’란 생각이 들었다. 국가적인 모욕이란 생각에 이르니 부아통이 터져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중국여행 중에는 웬만하면 다투지 않는 게 상책이다. 다투면 위험이 뒤따르니 조심해야 한다.

문득 20여년 전 어느 사찰에 수련회를 갔다가 만난 할머니 생각이 났다. 식당 아줌마하고 다투고 나서 ‘당장 때려치우고 당장 돌아갈까?’라고 생각할 즈음! 할머니 한 분이 다가오더니 “참으이소! 복(福)지러 왔지예?”라고 경상도 사투리로 달랜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정신이 바짝 들었다. 부끄러워 몸 둘 바를 모르겠다. 복을 지으러 왔지 않은가!? 화를 내면 복을 짓는 게 아니라 까먹는다는 교훈에! 할머니의 “참으이소!”를 고이 간직하고 다녔다. 

그렇지만 이번에는 국가적 자존심 때문에서도 그냥 넘길 수가 없었다. 그러나 말이 통하질 않아서 ‘벙어리 냉가슴!’격이었다. 그래도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호텔 카운터에 찾아갔다. 치미는 분노는 누그러뜨리고, 웃는 얼굴로 짧은 중국어 실력으로 부드럽게 하자니 보통 힘든 게 아니었다. “방이 냄새가 나고, 목욕탕 고장이라서 도저히 안 되겠다”는 내용을 손짓발짓(?)까지 총동원해 전달했다. 종업원이 표정이 의외로 부드럽더니 두 손을 합장하는 것이다. 중국인들은 두 손을 합장하면 상대방 말에 수긍한다는 뜻이 된다. 그러면서 다른 방을 주겠다고 한다. 이렇게 감정이 손상되지 않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성취감에 행복하였다.

이번 여행에서도 또 하나의 지혜를 터득했다. 20년 전 “참으이소! 복지러 왔지예!?”라는 할머니의 충언을 통해 ‘자기성찰의 지혜’를 발휘함으로써 위기적 상황을 원만히 해결할 수 있었다. 자기의 마음을 스스로 살필 수 있을 때 인간은 한 단계 성숙해 진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들은 여행을 또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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