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주 수필가

삼양리토성을 답사하고 시간이 남아 서산성을 가기로 했다. 삼거리 주유소 앞에서 지도를 보고 서산성 들머리를 찾았다. 옥천 사람들도 서산성의 위치를 확실히 아는 사람은 드물다. 서산성은 옥천 사람들을 괴롭힌 산성일까, 그들의 삶을 보호해준 산성일까. 이 고장 사람들은 백제를 원했을까, 신라를 원했을까. 이런 의문이 꼬리를 문다.

삼거리에서 보은 방향 국도를 따라 경부고속도로 지하도를 빠져나가 한 200m쯤 걸었다. 왼쪽에 마성산 등산로 안내판이 보였다. 안내판에도 서산성의 위치는 표시되지 않았다. 서산성이 삼양리와 옥각리의 경계 지점이라는 말을 들었기 때문에 분명히 이 산줄기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옥천에 마성산은 두 군데이다. 서마성산은 서쪽으로 옥천읍과 군서면의 경계인 산으로 관산성, 용봉산성, 동평산성, 마성산성이 이어진다. 동마성산은 여기서 구읍 쪽 정지용 문학관 뒷산으로 이어져 대청호를 내려다보게 되는 산이다. 옥천 사람들이나 대청호 오백리길을 걷는 사람들은 동마성산을 마성산으로 안다. 그러나 신라에서 보는 옥천의 방어선은 군서면 경계의 마성산일 것이다.

등산로를 따라 비탈길을 올라갔다. 고갯길이 분명하다. 길목에서 바라보니 국도와 고속도로가 한눈에 보인다. 이곳이 군사적 경제적 요충지라는 것은 1500년 전이나 마찬가지이다. 서산성의 중요성 또한 무시할 수 없다. 안부에 오르니 옥각리로 통하는 고개라는 것이 분명하고 옆으로 너른 공터가 보인다. 누군가 한동안 경작한 흔적이다. 이곳이 서산성의 문지라는 것을 까막눈으로 봐도 알 수 있었다. 여기가 바로 남문지일 것이다. 한 200평은 족히 될 것 같다. 상당히 큰 건물이 있었나 보다. 고갯길은 지금도 사람들이 다닌 흔적이 뚜렷하다. 문지에서 동쪽으로 올라가는 길이 뚜렷하다. 군데군데 석성의 흔적이 보인다. 석축 위에 흙을 쌓아 토성을 만든 흔적을 지금도 알아 볼 수 있다. 이른바 토석혼축산성의 표본이다.

서산성으로 오르는 길은 부드럽다. 마성산으로 오르는 대청호오백리길의 출발점이라 사람의 왕래가 많은 것 같다. 나도 그렇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그냥 산을 밟고 지나가는 것에 의미를 둔다. 때로 옛날의 전설이나 지역의 역사를 생각해보는 것도 등산의 묘미가 있을 텐데 말이다. 산줄기는 야산이라고 해도 상당히 길다. 경사는 완만하고 높지 않지만 주변을 다 내려다 볼 수 있다. 특히 여기서 동으로 가면 보은, 북으로 가면 군북면을 지나 회인, 문의로 통하는 길목이다. 서쪽으로 가면 숯고개를 지나 부여로 가는 중요한 길목이 된다. 그러므로 서산성도 관산성의 부속 산성 역할을 제대로 했을 것이다.

얼마 오르지 않아 서산성 표지석을 발견했다. 표지석이 있는 곳도 건물이 있었는지 꽤나 넓어 보인다. 역시 잡초가 우거져 있다. 기록에 의하면 이 서산성에서는 많은 유물이 출토됐다고 한다. 공터는 건물지인 모양이다. 어떤 건물이었는지 상상해 본다.

오늘의 답사는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과거가 현재에 어떤 바탕이 된다면 과거에 치열한 전장이었던 이곳은 오늘 이곳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를 어떤 바탕을 마련해 주었을까? 의문은 끊이지 않는다. 아직도 수없이 많이 남은 옥천의 산성 답사가 그 의문을 풀어 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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