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통대학교 행정학과

우리 민족은 한(恨)이 많은 민족이다. 민간 토속신앙에서 신앙 대상으로 삼고 있는 분들을 보면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처형당한 남이 장군, 비운으로 죽어간 신라 마지막 임금 경순왕의 아들 마의태자, 고려의 사직을 지키려다 살해당한 최영 장군, 비운의 단종과 단종비 송씨부인, 임경업 장군, 사도세자 등이 있다. 이들은 모두 억울하게 죽어서 한을 품고 죽었다고 여긴다. 우리 조상의 휴머니즘은 이 한을 품고 죽은 사람들을 우리 삶 속에 끌어들여 함께하고 있고 민간신앙은 바로 이 한과 원을 푸는 종교이다.

옛날 고을의 수령부터 나라 임금에 이르기까지 한이 맺히고 그 맺힌 한이 원이 되어 응어리진 것을 풀어주는 것을 중요한 일로 여겼다. 홍수가 나거나 가뭄이 오거나, 일식 월식 등의 자연현상이 발생하면 정치인들은 원한을 품고 죽은 사람이 없는지를 살피고 원풀이하는 해원(解怨) 정치를 중시했다. 이는 민한(民恨)이 서리고 서리면 천한(天恨)이 되어 인간사에 영향을 준다는 민천합일(民天合一) 사상을 바탕으로 한다.

어제는 2014년 4월 16일 인천에서 제주로 향하던 세월호가 진도군 앞바다에서 침몰한 지 4주기가 된 날이었다.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가던 경기도 안산 단원고 학생 325명을 포함한 총 476명 가운데 304명의 희생자를 낸 세월호 사건과 관련하여 정부합동 분양소 철거 등 그 기억이 사라지도록 하는 일들이 시작되고 있다.

그러나 단원고 학생을 포함한 희생자 가족의 한이 풀어지지 않고 더욱 응어리져서 원한이 되는 모습들을 볼 수 있다. 여전히 수면 아래에 잠겨 있는 사고 원인에 대한 의문, 세월호 추모공원 논란, 촛불 혁명이 이 모든 의혹을 풀어줄 것이라는 기대에 대한 좌절, 세월호 사건을 정치나 이데올로기 싸움의 논쟁거리로 삼는 사람들에 대한 회의는 살아남은 자들의 한(恨)을 원(怨)으로 바꾸고 있을 뿐이다. 교과서대로 세월호 사건 이후 안전사회를 지키겠다는 약속은 2년 8개월 만에 사라진 국민안전처와 같이 사라지고, 마땅히 벌을 받아야 할 사람들은 돈과 권력으로 숨어버리고, 세월호의 노란 리본은 장식품이 되어 버렸다.

우리의 내세관은 원한에 사무친 자는 죽어도 저승으로 가지 못하고 이승을 맴돈다고 한다. 저승에 가지 못하고 이승을 맴도는 영혼은 가장 불행한 사람 가운데 하나이다. 우리는 이승을 맴도는 세월호의 희생자를 놓아주어야 할 것이다. 이 땅에만 붙들어 놓아서는 안 된다. 편안하게 이승으로 떠나도록 놓아 주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죽은 자의 영혼만이 아닌 살아남아서 슬픔·후회·자책·분함·억울함·원통함 등으로 죽은 자와 연계된 사람들의 한도 풀어주어야 한다.

맺힌 것을 씻고 풀어내기 위해서는 특별조사위원회를 만들고 추모회를 여는 것으로 부족하다. 한이 원이 되어 응어리진 희생자의 살아남은 가족과 그들과 함께하는 사람들의 마음의 소리를 들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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