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병숙 수필가

 

나, 그거 사고 싶어!

세 자매의 수다가 딱 끊겼다. 돌아보니 엄마는 무표정을 거두고 모처럼 생기를 띄고 있었다.

뭐를? 그러니까 머리에 대고 이렇게 돌리면 붕 뜨게 하는 거 있잖아. 돌리고 슬슬 빼. 그러니까 머리가 하나 가뜩 부풀어 올라, 요렇게. 엄마는 어눌한 손을 들어 머리에 갖다 대고 동그랗게 원을 그렸다. 명확치 않은 엄마의 손놀림에 마음이 동동거렸다.

아, 고데기? 머리 손질 잘 하는 여동생이 대답했다. 엄마의 눈빛이 반짝였다. 연신 누워 지내다 보니 당신의 떡진 머리가 한심해 보였나 보다.

전엔 친정 현관 들어서기 무섭게 나를 닦달했던 엄마였다. 머리 꼴이 그게 뭐야! 꼭 시골에서 갓 상경한 촌뜨기 같어. 우찌마끼로 예쁘게 하고 다니면 얼마나 좋아. 옷은 왜 꼭 어린애처럼 입고 다니니. 신발은 또 어디서 저렇게 투박한 걸 구했을꼬. 나만 보면 야단이 났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마음에 안 든단다. 남이 들으면 의붓자식 왔나 할 지경이었다. 일찍 시집보낸 허전함을 그렇게 풀고 계시나 하면서도 늘 서운했다. 집에서 신던 슬리퍼 바람에 짬만 나면 달려가고 싶은 곳이 친정이건만 움찔 거울 한 번 더 보게 되었다. 그러던 분이 근자에는 내가 봉두난발을 하고 가도 아무 말 없이 쳐다보기만 했다.

엄마는 입성이 좋아야 대접받는다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셨다. 없는 살림에도 동네 양품점을 단골로 드나드셨다. 외상장부를 달아 놓고 자식들 옷을 사들였다. 내 취직 소식을 듣자마자 제일 먼저 달려가 초록색 원피스를 사 오기도 하셨다.

한번은 캐비닛을 여는데 못 보던 노랑색 블라우스가 있었다. 엄마는 수줍게 웃으시며 하도 예쁘다 해서 사 왔는데 어때? 어린 내가 봐도 눈이 부시게 고왔다. 엄마는 때로 그 옷을 꺼내 거울에 비춰보곤 했다. 엄마, 그 블라우스는 왜 맨날 보기만 해? 엄마는 빙긋이 웃기만 했다. 아까워서 애낀다 하셨다가, 나중엔 맞춰 입을 만한 옷이 없다 했다. 결국, 나비처럼 팔랑이던 그 옷을 한 번도 입지 못하셨다.

우리 남매가 모두 출가하고 여유가 생기자 엄마는 비로소 당신만을 위한 단골을 만드셨다. 남대문 시장 옷 골목까지 지하철을 타고 다니곤 하셨는데 감도 좋고, 세련된 모양으로 잘 골라왔다. 갑자기 어디를 모시고 가게 돼도 단정하게 입고 나타나셔서 나도 모르게 어깨가 으쓱했다.

그러던 분이 파킨슨병으로 몸져눕게 되자 옷에 대한 관심이 사라졌다. 앞 터짐 옷을 사다 드리자 줄창 그 옷에 파자마만 입으셨다. 사람 오는 것도 꺼렸다. 휠체어를 타고 바깥바람을 쐬자고 해도 머리를 흔들었다. 만사를 귀찮아했다. 식사량도 줄어 많이 여위었다. 의욕이 사라진 엄마를 바라보며 이러다 영영 못 일어나시는 건 아닐까 더럭 겁이 났다.

병원에 다녀오는 날, 엄마가 갑자기 분홍색 레이스 달린 잠옷이 사고 싶다고 했다. 누워만 계신 분이 뚱딴지같이 웬 레이스? 어느 TV 드라마에서 아무개 탤런트가 입고 나왔단다. 나도 모르게 한바탕 웃음이 나왔다. 웃다 보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얼른 눈물을 감추었다. 어리둥절하고 계신 엄마에게 그게 그렇게 입고 싶으세요? 하니 엄마는 서슴없이 응! 하신다. 엄마 마음에 어느새 예쁜 옷이 다시 들어와 있었다. 아파도 엄마는 여자였다.

우리가 들어간 양품점에는 그 비슷한 모양은커녕 엄마의 양에 차는 잠옷이 없었다. 엄마는 고집을 꺾지 않고 우리 눈치만 살폈다. 도대체 어떤 레이스이길래 이리 엄마의 마음을 사로잡았을까? 궁금해 방송국에 전화해 보고 싶을 지경이었다. 꼭 원하는 걸 사드리고 싶었지만 환자를 모시고 찬바람에 이리저리 다닐 수도 없어 평범한 잠옷 한 벌을 사드렸다. 못내 아쉬운 표정을 짓는 엄마의 마음을 나는 짐작할 수 있었다. 나도 그랬으니까. 엄마라고 다를 리 있겠는가.

병세가 차츰 호전세로 돌아서자마자 엄마는 머리염색 타령을 시작했다. 아픈데 머리가 좀 하야면 어때서 그러셔? 요즘 트렌드가 염색 안 하는 거야. 우리가 온갖 감언이설로 말려도 막무가내, 내가 너무 나이 들어 보이지? 하며 거울로 머리를 이리저리 비춰보곤 했다. 결국, 우리 몰래 요양사의 부축을 받으며 지팡이를 짚고 미장원에 다녀오셨다.

이젠 한술 더 떠서 고데기 타령이시다. 외출도 마다하는 양반이 그게 왜 필요한 걸까? 막내가 눈을 찡끗하며 우리에게 싸인을 보냈다. 또 아차 했다. 무조건 이구동성으로 모처럼 엄마가 가지고 싶어 하는 상품을 찬양했다. 다소곳이 앉아 계신 엄마의 얼굴에 문득 노랑나비가 펄럭이며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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