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주, 이렇게 하면 어떨깝쇼?

그때 교리 신덕기 임방주가 최풍원에게 방법을 냈다.

“교리 임방주께서는 좋은 생각이 있으시우?”

최풍원이 물었다.

“얼마 전 성내 영일 정씨 문중에 상이 났었소. 그때 상여에 꽂힌 꼭두들을 보니 무척 재밌게 생겼더라구요. 거기 가서 상여에 꽂힌 꼭두를 빼오라하면 확실하지 않겠슈?”

교리 신덕기 임방주가 실실 웃어대며 의견을 내놓았다.

“어떻게 하겠느냐?”

최풍원이 비호와 박왕발의 의견을 물었다.

“대주, 전 싫소!”

“나도 싫소!”

박왕발이와 비호가 질색을 하며 거부했다.

두 사람이 질색을 하는 것도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꼭두는 상여에 장식하는 나무인형이다. 상여에는 갖은 모양의 꼭두와 그 종류도 아주 다양했다. 꼭두는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저 먼 세상으로 떠나는 망자를 위해 길을 인도하고 위로하는 상징적인 인물상이었다. 이러한 꼭두는 망자를 하관하고 상여와 함께 모두 불태워버리는 것이 상례였다. 그런데 얼마 전 영일 정씨 집안에서 큰어른이 돌아가자 인근의 솜씨 좋은 목공들이 모두 모여 화려하게 상여를 꾸몄고, 동네에서는 그 상여를 그대로 곳집에 보관해오고 있었다. 장가도 가고, 이미 여러 번 가까운 이들의 죽음을 경험해본 임방주들이야 삶과 죽음의 경계가 문턱 하나 넘는 정도로 대수롭지 않게 여기지만 아직도 댕기머리에 볼테기가 보송송한 박왕발이 같은 머슴아들이나 마빡에 여드름이 뿔룩뿔룩 총각들은 죽음이 아주 먼 곳의 일이고 두려움의 대상일 수밖에 없었다. 꼭두를 뽑아와야 하는 상여가 있는 곳은 금성 고찌거리의 곳집이었다. 곳집은 대개가 마을의 후미진 곳에 있어 그곳을 지나가려면 대낮에도 머리끝이 곤두서고 등줄기가 서늘한데 곳집 안으로 들어가 상여에 박힌 꼭두를 빼오라고 하니 어린 비호와 박왕발이로서는 칠색팔색 할 일이었다.

“예이, 이놈들아! 어디 가서 사내꼭지라고 하지도 말거라. 꼭두 하나 빼오지 못하는 놈들이 그래도 사내라고 거시기를 달고 다니느냐?”

교리 신덕기 임방주가 두 사람을 놀려댔다.

“그러게, 아까 두 놈이 싸울 때는 어른처럼 싸우더니 이제보니 허깨비구만!”

양평 김상만 임방주도 신덕기 임방주 편을 들며 두 사람을 몰아세웠다.

“다른 곳을 갔다 와도 될 텐데, 하필이면 왜 곳집이란 말이요?”

“다른 곳을 갔다 오면 안 되겠소?”

좀 전까지만 해도 입씨름을 벌이며 잡아먹을 듯 싸우던 두 녀석이 곤경에 처하자 서로의 생각에 동조를 하며 버텼다.

“그래 어디를 갔다 오겠느냐?”

“저기 황석리 선돌을 한 바퀴 돌고 오면 안 될까요?”

황석이 서낭당 옆에는 사람 키보다 훌쩍 큰 돌이 서있었다. 그 선돌에는 이런저런 전해오는 이야기들이 서려있었다.

“황돌이 예서는 보이지도 않는데, 너희 둘이 짜고 중간에서 돌아온다면 어떻게 믿겠느냐?”

“어떻게 하면 믿겠슈?”

“큰형님들, 어떻게 하면 믿으시겠소?”

곳집에 가지 않으려고 두 녀석이 이젠 한 몸처럼 뜻을 합쳤다.

“그럼 황돌을 여기까지 지고 오너라!”

양평 김상만 임방주가 가당치도 않은 요구조건을 달았다.

“수십 명 장정이 달려들어도 못 옮길 바위덩어리를 지고 오라구요? 될 소리를 하세요!”

비호가 무슨 되지도 않는 소리냐며 황당해했다.

“그러니까 곳집에 가서 꼭두를 뽑아오너라!”

교리 신덕기 임방주가 자신의 생각을 굽히지 않았다. 신덕기가 반은 싱겁기가 섞인 시합을 종용하는 것에는 두 녀석들의 담력을 시험해보려는 속내도 있었다.

“둘 중 성내 곳집에 가서 꼭두를 빼서 여기까지 먼저 당도해 내기에 이기는 사람에게는 귀한 선물을 내리겠다!”

최풍원이 마지막으로 결정을 내렸다.

“큰형님의 말씀이니 군말 없이 따르거라!”

도식이가 최풍원의 뜻에 따라 명령을 내렸다. 비호와 박왕발이가 더는 꽁무니를 빼지 못하고 일어섰다. 그 꼬락서니를 보니 영락없는 도살장 끌려가는 소요, 낯짝은 똥 먹은 상이었다. 그 모양새를 보고 있는 임방주들 표정에서는 얄궂은 미소가 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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