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번역가

기원전 369년, 주(周)나라는 현왕(顯王)이 즉위할 무렵 아주 쇠약했다. 이틈을 타서 진(秦)나라가 자주 쳐들어왔다. 어느 날 군대를 이끌고 와서 주나라에 요구했다. “구정을 내놓으시오! 그러면 순순히 물러가겠소.”

구정(九鼎)은 황실 제사 때 쓰이는 9개의 솥으로 천자의 권위를 상징한다. 이에 현왕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 이때 신하 안률(顔率)이 나서서 아뢰었다.

“천자께서는 걱정하지 마십시오. 신이 제나라에 가서 구원을 요청하겠습니다.”

안율이 제나라 왕을 만나 말했다.

“진(秦)나라가 황실의 보물인 구정을 내놓으라고 합니다. 그래서 주나라 대신들이 긴급히 논의하기를 진(秦)나라에 구정을 주느니, 차라리 제나라에 주는 것이 낫겠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는 이전에 주나라가 어려울 때마다 제나라가 도왔기 때문입니다. 제나라가 구정을 얻게 되면 이후에 크게 이로울 것입니다. 그러니 왕께서는 잘 헤아려 진(秦)나라를 물리쳐주십시오!”

제나라 왕이 이 말을 듣고 무척 기뻐했다. 당장에 주나라 황실을 위협하는 진(秦)나라 군대를 물리치도록 하였다. 제나라 5만 병력이 주나라로 향했다. 이 소식에 진(秦)나라는 바로 포위를 풀고 돌아가고 말았다. 이렇게 하여 주나라는 위기에서 벗어났다. 하지만 이번에는 제나라가 문제였다. 주나라를 구해주었으니 약속한 대로 구정을 내놓으라는 것이었다.

주나라 현왕은 또 다시 어쩔 줄을 몰랐다. 그러자 신하 안율이 나서서 아뢰었다.

“천자께서는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다시 가서 분명하게 해결하겠습니다.”

안율이 제나라 왕을 뵙고 말했다.

“제나라의 의로움에 힘입어 주나라가 편안하게 되었습니다. 이전의 약속대로 구정을 헌납하고자 합니다. 왕께서는 구정을 어느 길을 통해 옮길 생각이십니까?”

이에 제나라 왕이 위(魏)나라나 초나라 길을 거쳐야 하지 않겠냐고 물었다.

그러자 안율이 대답했다.

“그것은 안 됩니다. 위나라와 초나라는 이전부터 구정을 얻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구정을 싣고 그들 나라를 지난다면 그들이 가만히 보고만 있겠습니까?”

그러자 제나라 왕이 고민스러웠다. 안율이 이틈을 놓치지 않고 이어 말했다.

“구정은 그렇게 간단히 옮길 수 있는 물건이 아닙니다. 옛날 주나라가 구정을 옮길 때 정(鼎) 하나에 9만명의 병사를 동원하였습니다. 정이 아홉 개이니 81만명의 병사가 동원된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이동하는 길을 닦아야 하는데 그 일 또한 이루 말할 수 없는 인력이 동원되었습니다. 하지만 제나라는 대국이니 인력을 동원하는 일과 길을 닦는 일이 어려움이 없을 것입니다. 왕께서는 언제고 날짜를 정해주시면 저희가 바로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러자 제나라 왕은 손을 내저으며 결국 구정을 포기하고 말았다. 이는 유향(劉向)이 편찬한 ‘전국책(戰國策)’에 있는 이야기이다. 기모비계란 위태로운 상황을 벗어나는 기이한 꾀와 신비로운 계책을 말한다. 매사에 당하고만 사는 서러운 팔자라면, 이참에 고전을 한 번 읽어 지혜를 키울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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