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순철 수필가

 

이건 미투 고백이 아니라 청혼이라고 해야 맞는 거 아냐?

미투라는 이름을 빌려 청혼에 성공하고 시인으로서의

자존심 살리고, 이름도 알리고, 한꺼번에 세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셈이네. 역시 시인의 머리는 비상해!

시인의 광장에서 미투에 관한 중대 발표가 있다는 문자를 받은 것은 어제 오후 늦은 시각이었다.

언제나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쪽은 피해자이며 가냘픈 여성이었다. 오늘도 그럴 것이고, 여성의 힘으로 남자의 완력을 당해내기에는 한계가 있다. 옛날처럼 은장도라도 지니고 다닌다면 그렇게 일평생 가슴 찢어지는 아픔을 끌어안고 살아가지 않아도 되지 않았나 싶다.

“오 기자 일찍 왔어?”

“조금 됐어.”

“찌라시 받은 것 있으면 공유해.”

“찌라시가 뭐야?”

“알았어. 낱장 광고, 아니 보도자료 받았으면 좀 보여줘.”

“나도 그런 것 아직 받지 못했어.”

“괜히 아쉬운 소리 했다가 불량 언론인 될 뻔했잖아.”

“하하하 농담이었어.”

대부분 기자회견을 하게 되면 그날 발표할 내용이 담긴 보도자료를 미리 나누어주는 것이 일반적인 관행인데 오늘은 그런 게 없다.

우리의 기대는, 아니 전 국민이 바라는 것은 쥐꼬리만큼의 권력이나 부를 이용해 남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히고 적당히 얼버무려서 빠져나가려 하거나, 아니면 합의에 의한 성관계라는 등 어떻게든 법망을 교묘히 피하려는 그런 얄팍한 사죄가 아니다. 돌로 내려쳐도 달게 받겠다는 진심이 담긴 고백을 원하건만 지금껏 그런 고백을 한 사람은 아직 없었다.

40대 중반의 사내가 마이크를 들고 연단으로 오른다. “오래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오늘 미투와 관련된 고백을 하려는 사람은, 밤하늘에 흐르는 은하수같이 아름답고, 깊고 깊은 산속에 도란도란 흘러가는 청아한 계곡물처럼 정갈한 시어를 구사하는 시인 ‘황학수’입니다. 그러면 그의 고백을 들어보시겠습니다.”

“아니, 뭐야? 여자가 아니고 남자?”

여기저기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와 때를 같이 하여 작은 무대 위로 비리비리한 30대 남성이 올라왔다. 사내를 알아보는 기자는 없는 것 같았다. 내가 사회부 기자이고 문학에는 문외한이어서인지는 모르겠으나 처음 보는 얼굴이며 이름이다.

“오늘 여러분을 뵙자고 한 것은 제가 철없던 시절도 아니고 사회 물정을 어느 정도 알아가던 시절에 저지른 몇 번의 잘못! 실수가 아닌 욕망을 억제하지 못한 저의 잘못을 고백하고 피해자에게 용서를 받고자 함입니다.”

“몇 건씩이나?”

그제야 보도자료가 돌려진다.

통일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 문단경력 15년! 사내의 이력이 제법 화려하다.

“사춘기 때에는 지독하리만치 문학이라는 중병을 앓았습니다. 중학교 2학년 때 책가방을 내던지고 골방에 틀어박혀 돼먹지도 않은 원고지 칸을 메우며 하얗게 밤을 지새우는 날이 잦았습니다. 그렇게 중병을 앓다 보니 차츰 문학이 무엇이며 어떻게 써야 하는지도 어렴풋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뼈를 깎는 고통과 습작을 거쳐 시인이라는 이름표를 달았습니다. 당시는 등단만 하면 원고청탁이 무더기로 쏟아지고 먹고사는 것도 모두 해결되는 줄 알았습니다.”

사내의 말솜씨가 제법 유창하다. 처음엔 평범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전혀 아니다. 다음 말이 궁금하다. 목이 말랐는지 사내가 물 한 모금을 마신 후 좌중을 둘러보고 다시 말을 이어간다.

“시인으로 등단했다고는 하나 중학교 2학년 중퇴인 저의 학력 가지고는 어림도 없었습니다. 그래도 열심히 뛰어다니며 저를 알렸습니다.”

“서 기자, 본론은 언제 나오는 거야. 왜 이리 시각을 끌어?”

“조금만 기다려 봐! 이제 핵심 내용이 나오겠지.”

“저에게도 행운이 찾아왔습니다. 2010년 봄, 고등학교 문학동아리 학생들이 저에게 구원의 손을 내밀었습니다. 제가 이 세상에서 시를 가장 잘 쓰는 사람으로 착각하고 건방을 떨 때였습니다. 그런 저에게 시를 가르쳐 달라는, 그것도 청순하기 그지없는 고등학교 2학년의 남녀 학생 일곱 명은 구세주였습니다.”

“뭐야? 저런 시시한 이야기는 누구나 할 수 있는 것 아냐?”

“그러게 말이야.”

언제나 서두르는 나와는 달리 느긋한 서 기자는 미동도 하지 않고 사내의 입을 주시하고 있다.

“저는 그 학생들에게 시 창작 지도라는 이름으로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 문학에 대한 이야기도 들려주고 어렵게 성장한 내 과거 이야기도 들려주며, 가르친다는 입장보다 선배로서의 조언을 더 많이 했습니다. 사실 선배라고는 하나 그들과 나는 5년 차이밖에 나지 않았습니다. 그중에서도 서진이라는 여학생에게는 어떻게 하면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까하는 늑대의 마음이 자라기 시작했습니다. 기회가 왔습니다. 서진이의 대학교 입학을 축하한다는 의미로 단둘이 만나 저녁을 먹고 술을 마셨습니다. 모두 저의 각본대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럼 강제로 술을 먹였다는 거야?”

모여 섰던 구경꾼들의 웅성거림이 들려왔다.

“정신이 혼미한 서진이를 내 자취방으로 데리고 왔습니다. 그다음은, 그다음은 차마 제 입으로 설명하지 못하겠습니다. 여러분의 상상에 맡기겠습니다.”

“그럼 성폭행이 그 한 번으로 끝입니까?”

성질 급한 청풍일보 유 기자가 질문을 던졌다.

“아닙니다. 그 이후 저는 다시는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다섯 번이나 더 그 짓을 했습니다.”

“현재 그 피해자는 어디에 있습니까?”

“네. 대학 졸업 후 사회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다른 학생에게는 몹쓸 짓을 하지 않았습니까?”

“네. 하지 않았습니다.”

“정말입니까?”

여기저기서 질문이 마구 쏟아져 나왔다.

“네. 정녕 시인의 이름을 걸고 맹세합니다. 다른 학생은 손대지 않았습니다.”

“피해자에게 잘못했다는 마음은 드는 겁니까?”

“죽을죄를 지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제 일생 서진씨를 위해 바치고 싶습니다.”

“피해자가 받아줄 것 같습니까?”

“받아줄 때까지 빌고 또 빌겠습니다.”

“오빠 그럴 것 없어, 나는 이미 오빠 용서했어.”

관중 속에 있던 미모의 여인이 앞으로 걸어 나와 황 시인을 향해 달려간다. 곧 그들은 얼싸안고 세상 모든 것을 얻은 사람처럼 빙그르르 돌아간다.

“서 기자! 지금 뭐 하는 거야?”

“이건 미투 고백이 아니라 청혼이라고 해야 맞는 거 아냐?”

“미투라는 이름을 빌려 청혼에 성공하고 시인으로서의 자존심 살리고, 이름도 알리고, 한꺼번에 세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셈이네. 역시 시인의 머리는 비상해!”

시인의 동료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빙 둘러서서 그 광경에 손뼉을 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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