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흥구의 세상 엿보기]무대
[강흥구의 세상 엿보기]무대
  • 충청매일
  • 승인 2018.04.03 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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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

가로등이 업무를 마치고 서서히 퇴근한다. 창밖을 내다보고 있노라니 어느덧 나뭇가지에 새순이 돋아나 있다. 갓 입사한 병아리 사원처럼 신선함을 전해준다. 묵은 잎이 자리했던 곳엔 새잎이 묵은 잎을 밀어내고 돋아나 앞날을 설계하고 있다. 떨어진 나뭇잎은 새순을 지켜보며 흐뭇한 표정을 짓는다.

며느리로 부터 연극 티켓을 예매해 놓았으니 올라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아내와 함께 서울로 올라가 공연장으로 찾아갔다. 조용히 입장해 자리를 잡고 앉았다. 곧 연극이 시작됐다. 무대 위에서 열연하는 출연자들을 바라보고 있다 문득 옛 생각에 젖어 들었다.

처음 입사했을 때다. 오랜 준비과정을 거치고 드디어 무대에 올랐다. 무대 위에서 나는 주인공이 되어 관객을 울리고 웃기고 했다. 때로는 꼭두각시가 되어 뒤에서 조종하는대로 움직이기도 했다. 막이 내리고 다시 막이 올랐을 때 나는 관객이 되어 관중석에 앉아있다. 무대도 바뀌었고 등장인물도 바뀌어 있다.

그때그때 극본에 따라 가난뱅이도 되고 회사원도 되었다 사장도 된다. 꼭두각시가 되어 내 의지대로 활동하지 못하고 정해진 각본에 따라 움직인다. 슬픈 연기를 할 때면 관객도 함께 울고, 기쁜 연기를 하면 함께 웃고 감동한다. 노래도 함께 부르고 호탕하게 웃기도 한다. 힘들고 즐겁던 막이 내리고 장내는 어둠속에 묻힌다.

다시 막이 올라가면 새 세상이 밝아온다. 왠지 무대가 낯설다. 곧이어 등장인물이 올라오는데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이다. 전혀 다른 왠지 먹먹하기만 한 다른 사람 다른 느낌 들이다. 어느새 나는 관객이 되어 관중석에 앉아 무대 위의 그들을 지켜보고 있다. 슬퍼할 때 같이 슬퍼하고 웃기면 웃는다. 한때는 나도 저곳이 나의 무대였는데 이제 넘겨주고 뒤로 물러서야 했다. 떨어진 나뭇잎이 된 것이다.

한때 내가 아무리 중요한 역할을 했으면 무엇하리요. 이제 내가 위치하고 있는 곳은 무대 위가 아닌 관중석인 걸. 화려했던 무대 생활은 잊고 객석에 앉아 무대에서 후배들이 연출하는 장면들을 지켜보며 울고 웃으면 된다.

현실을 직시하고 이제 그들이 하는 대로 지켜보고 있어야 한다. 설령 그들이 하는 것들이 성에 차지 않더라도 지켜보기만 해야 한다. 나의 시대는 막을 내렸다. 새로운 전혀 다른 환경과 조건에서 지켜보며 살아야 한다. 그것이 나의 길이요 인생 이다.

내가 무대에서 활동할 때에는 관중석의 관중들이 보이지 않았었다. 그래서 그들을 의식하지 않고 내 생각과 느낌대로 행동했었다. 이제 관중석에 앉아 무대를 바라보니 무대 위의 출연자들이 훤히 보인다. 순간 섬뜩 해진다. 내가 무대에서 활동할 때 관중석에서 나를 지켜보며 나의 행동에 대해 뭐라 했을지가 궁금해졌다.

현실을 깨닫고 이제 제2의 막을 올릴 준비를 한다. 지금까지의 경험을 바탕 삼아 전혀 다른 새로운 연극 무대를 올릴 준비를 서두른다. 무대는 1막으로 끝나는 게 아니다. 2막이 기다리고 있다. 어설픈 무대가 아닌 진정한 삶의 무대를 준비하고 제대로 된 새로운 각본을 무대에 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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