⑥ 무뢰배들을 모아 동몽회를 결성하다

풍원이가 북진본방을 알리기 위해 구휼미를 풀어 고을민들의 인심을 얻어 보겠다는 계산은 제대로 먹혀 들어갔다. 세상에서 가장 악독한 놈이라 할지라도 자기에게 잘해주는 사람에게 칼을 들이대는 놈은 없었다. 더구나 고을민들은 타고난 천성이 순한 사람들이었다. 비록 세상이 하 수상해서 양반과 부자들에게 당하며 살다보니 심성이 각박해져있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남에게 받은 은혜조차 모르는 척 넘어가는 그런 몰염치한 사람들은 아니었다. 최풍원으로부터 구휼미를 얻어먹은 사람들은 뭐라도 팔 물건이 생기면 청풍읍장을 지나 북진본방까지 강을 건너왔다. 그것이 우리네 인지상정이었다. 관아에서 구휼미가 끊긴 것은 이미 오래전이었다. 설령 구휼미가 내려왔다 해도 고을민에게 돌아갈 쌀은 없었다. 이미 빌려먹고 갚지 못한 구휼미가 수년씩 밀렸는데 그런 고을민에게 관아의 아전들이 쌀을 내줄리 만무했다. 아전들은 구휼미를 푸는 대신 갚지 못한 쌀에 고리의 이자를 붙여 비틀거리며 걷는 것도 힘겨운 놈에게 다리를 걸어 넘어뜨리는 셈이었다. 굶주리는 고을민들을 구제하라고 나라에서 내려 보낸 구휼미를 관아에서는 장부상으로만 빌려주었다. 장부에는 몇 년 전부터 빌려먹고 갚지 못한 쌀에 이자까지 붙어 원전에 대여섯 배도 넘게 불어나 있었다. 관아의 장부에는 고을민들에게 골고루 구휼미가 배급된 것처럼 되어있지만 실제로 배곯는 백성들 입으로 들어오는 쌀은 한 톨도 없었다. 관아의 원님이나 아전들은 그 쌀을 도가의 장사꾼들에게 넘겨 사사로이 제 주머니만 채웠다. 청풍도가의 장사꾼들은 관아보다도 더 고을민들을 괴롭히며 횡포를 부렸다. 장사라는 것이 남는 물건은 내어주고 모자라는 물건은 들여와 막힌 곳을 뚫어주며 흐름을 원활하게 만들어 사람들을 편하게 해주는 것이 할 역할이었다. 그런데 청풍도가에서는 역으로 장사를 하고 있었다. 그건 장사도 아니었다. 장사의 허울을 쓰고 도적만도 못한 짓거리를 하고 있었다. 이놈들은 그나마 조금씩 장마당에 흘러나오는 곡물들조차 싹쓸이를 해서 씨를 말렸다. 그 속셈은 분명했다. 쌀값을 앙등시켜 폭리에 폭리를 취하기 위해서였다. 그뿐이 아니었다. 정말로 죽을 지경이 된 사람들은 쌀이 금가루라도 우선은 먹고봐야했다. 살아야 그 다음에 무슨 일이라도 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청풍도가 장사꾼들은 쥐똥만큼 쌀을 빌려주고는 일 년 내내 일을 부려먹고 세경도 한 푼 주지 않았다. 청풍도가 장사꾼들이 고을민들에게 그런 악행을 저지르면서도 붙잡혀가지 않는 것은 관아와 한통속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북진본방에서는 관아에서도 하지 않는 일을 대신했다. 청풍도가 장사꾼들은 제 잇속만 차리느라 고을민들은 굶어죽거나 말거나 곡물을 쟁여놓고 내놓지 않았지만, 북진본방에서는 싼 값으로 쌀을 내놓거나 돈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나중에 갚기로 수결을 받고 거저나 다름없이 구휼미를 풀었다. 그때만 해도 난전이라 할 것도 없었다. 청풍 인근마을에서 구휼미를 얻으려고 모여든 사람들을 상대로 간단한 요깃거리나 팔아보려고 몇몇 탁주사발집이 생기더니 보따리장사가 아름아름 생겨나고 소규모로 서던 난전이 짭짤하다는 소문이 나자 우후죽순으로 늘어났다. 거기에 불을 붙이고 북진난장이 청풍읍장만큼 구색을 갖추게 된 것은 우갑 노인이 끌고 온 경강선과 경강상인들이었다. 이들이 북진본방에 물건을 풀어놓자 산지사방에서 장사꾼들이 이를 떼어다 팔기위해 모여들었다. 최풍원은 이들을 위해 나루터에 가가를 늘리고 누구든 이곳에 와 장사를 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자 북진나루에 서던 난전은 더욱 성황을 이루었다. 사람들이 모여 들며 장사가 제법 구색을 갖춰나가자 북진본방에서도 곳간을 늘려 짓고 점방도 늘렸다. 취급하던 물목도 예전과는 다르게 다양해지고 물량도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늘어났다. 그만큼 북진나루를 드나드는 배들도 늘어났다. 한적하기만 하던 북진나루에도 사람들의 왕래가 잦아지고 포구에도 짐배들과 경강선들이 수시로 드나들었다. 사람들은 필요한 물건도 사고 신기한 물건을 구경하기 위해 장마당으로 몰려들었고, 사람들이 몰려드는 곳에 장사꾼들은 돈 냄새를 맡고 달려들기 마련이었다.

북진난장이 활기를 띄기 시작하자 별별 사람들이 다 모여들었다. 사람들이 모여 들다보면 ‘개도 텃세한다’고 동네에서 빌빌거리던 녀석들이 괜히 거들먹거리기 일쑤였다. 최풍원도 이제껏 장사를 해오며 숱하게 당했다. 장사를 하며 거친 객지를 다니다 보면 텃세를 부리는 놈들이 수없이 많았다. 풍원이 역시 그런 무뢰배들에게 뜯기고 당하며 지금까지 장바닥에서 잔뼈가 굵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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