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나라냐라고 물었던 촛불시민들의 목소리가 헛구호가 아니었다는 사실이 다시 한번 확인됐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세월호 사고가 발생한지 7시간이 넘도록 적절한 대응책을 세우지 못하고 뭐했냐는 물음에 대한 답이 4년 만에 밝혀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라는 물음은 여전히 남는다. 박 전 대통령은 어린 학생들이 죽어가고 있다고 하는데, 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시간을 허비했는가라는 질문에 그것이 박 전 대통령의 성정이며 업무스타일이고, 그래서 국민이 이게 나라냐며 촛불을 들었다는 논리가 나온다.

박 전 대통령은 세월호 사고가 있었던 2014년 4월 16일 당일 오전 10시20분께 침실에서 나와 처음 보고를 받았다. 김장수 전 국가안보실장이 수차례 전화를 걸었으나 받지 않았고, 급기야 안봉근 제2부속비서관이 침실 앞까지 찾아가 수차례 부른 뒤에야 나온 것이다. 약 2분뒤인 10시22분께 박 전 대통령은 김 전 실장에게 전화를 걸어 “단 한명의 인명피해도 발생하지 않도록 하라. 여객선 내 객실, 엔진실 등을 철저히 수색하여 누락되는 인원이 없도록 하라”며 원론적인 지시를 내렸다. 이후 박 전 대통령은 최순실씨가 청와대에 방문한 오후 2시15분까지 아무런 지시도 내리지 않은 채 침실에 머물렀다.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일이다. 이 납득할 수 없는 상황 자체가 ‘박근혜정부’였던 것이다.

검찰은 세월호 사고 당일 침실에 있었던 것만으로는 죄를 물을 수 없다는 판단이다. 대통령으로서 적절한 지시를 안했다는 취지로 직무유기 등 혐의를 적용하기도 어렵다고 판단했다. 결국 ‘세월호 7시간’이 ‘침실 4시간’ 의혹으로 변경돼 숙제로 남은 셈이다.

특히 이날 오후에는 최순실씨가 청와대로 들어와 문고리 3인방과 정례회의를 하는 날이었다. 수석비서관들은 정호성 전 비서관에게 “중대본에 갔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전달하고, 정 전 비서관이 다시 최씨에게 이를 전달한 후에야 박 전 대통령이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로 움직였다. 박근혜 정부의 의사결정구조가 어떻게 이뤄졌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박 전 대통령 의사결정의 정점에는 최씨가 존재했으며 청와대에서 최씨의 위상이 어느 정도 인가를 입증해주는 일이다.

검찰이 세월호 7시간의 행적을 뒤늦게 밝히게 된 것은 문고리 3인방과 윤전추 행정관 등이 철저하게 거짓말을 했기 때문이다. 끈질긴 검찰의 추적으로 세월호 7시간 행적 일부를 밝힌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거짓말로 수사를 지연시킨 문고리 3인방과 윤 행정관 등 당시 청와대 관계자들에게 엄중한 법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 촛불 시민을 속이고 엄청난 국력을 낭비한 꼴이다.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4년 정윤회씨의 비선실세 의혹과 관련한 ‘청와대 문건 유출’ 사건 당시 박관천 전 경정은 검찰 조사 과정에서 최씨가 권력 서열 1위라는 말이 진실이었음을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최씨의 국정 개입 의혹은 끝이 없다. 옷값 대납부터 대통령 연설문, 해외순방 일정을 비롯한 청와대 기밀문건 검토 등 사적인 영역부터 정부 고위직 및 공공기관 인사 개입 등 전방위로 영향을 미쳤다는 의혹이다. 박근혜정부가 어떤 얼굴이었는지 상징하는 일이며 민낯을 보여주는 일이다. 검찰은 마지막까지 모든 진실을 파헤쳐 역사상 두 번 다시 이 같은 정부가 탄생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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