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개나리가 피었다. 작은 꽃봉오리가 무리지어 울타리를 뒤덮고 있다. 개나리를 보니 이제 정말 봄이 완연하다는 느낌이다. 개나리의 고 작은 꽃망울은 이제 막 학교에 들어가는 새내기를 바라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노란색이 더욱 그렇게 느끼게 한다. 개나리는 희망을 주는 꽃이다. 오래전 필자는 개나리와 관련해 시 한편을 지었다.

흐드러진 꽃잎도 눈부시지만 / 기다림이 이쁘다 / 터질 듯 펼쳐낼 듯 / 울타리 가득 꽃몽오리 / 달아오른 햇살들 노랗게 모아놓고 / 마악 뛰쳐 나온/ 고 1짜리 내 딸 아이 / 여드름 난 이마 / 봄이 이쁘다 / 설렘이 이쁘다 // -아침울타리 (전문)

이제는 성인이 되어 출가한 필자의 둘째 딸이 고등학교에 입학하던 봄에 지은 시이다. 그때 필자는 딸아이의 얼굴에 작게 난 여드름도 참 예뻐 보였다. 개나리의 작은 꽃몽오리 같기도 했던….

그 시절 딸애는 정말 꿈이 많았다. 어떤 일이든 다 성취할 것만 같고 무엇이든 될 것만 같았다. 당당했고 야무졌다. 딸만 꿈이 많았던 게 아니라 딸을 바라보는 가족들도 딸에 대한 꿈이 컸다. 나도 아내도 은근히 기대를 했다. 필자는 딸이 훌륭한 법조인이 될 것도 같았고, 대단한 정치가가 될 것도 같았다. 그만큼 딸은 공부도 잘했고 리더십도 있어 보였다. 아내는 딸이 훌륭한 의사가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남을 잘 이해하고 남의 말을 들어 주는 아이였기 때문이다. 때때로 우리 부부는 딸아이가 상담을 전공한 교수님이 될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딸애의 꿈을 공통분모로 우리 가족은 그때 참 행복했던 것 같다. 딸은 무럭무럭 잘 자랐다. 물론 고등학교 때 필자나 아내가 꿈꾸었던 법조인이나 정치가나 의사가 되지는 못했지만 나름대로 열심히 노력했고 대학에 진학해 자신의 꿈에 적합한 전공을 택해 학업에 전념했다. 그리고 관련된 일에 종사하다가 출가해 다시 꿈에 젖어 있다.

오늘 아침 개나리가 만발한 학교 울타리 곁을 걸었다. 등굣길 학생들이 삼삼오오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었다. 어린 학생들을 바라보노라니 문득 우리 딸의 고등학교 시절이 떠올랐다. 우리 딸처럼 이 학생들도 부푼 꿈을 안고 자신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겠지 하는 생각이 떠오른다. 그러면서도 필자는 딸을 키우면서 미처 강조해서 가르치지 못했던 것들을 이 학생들은 가졌으면 좋겠다는 소망이 일었다. 미래의 꿈을 갖되 그것이 단순한 직업의 성취로만 끝나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막연히 법조인이 되거나 사업가가 되거나 교수가 되거나 의사가 되는 것이 아니라 그 직업을 성취한 뒤 그 다음에 무엇을 할 것인가? 그래서 인류를 위해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생각하면서 꿈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일었다. 물론 세칭 일류대학에 입학해 좋은 직장을 잡고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일 수 있다. 그래야 안정적으로 사회를 위해 더 좋은 일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어떤 직업을 통해서 의미 있는 일을 하고자 하는 마음가짐과 더 나아가 사회를 위해 헌신 봉사하겠다는 것은 보다 더 큰 원대한 꿈일 수 있다. 새봄을 맞아 아침 울타리에 가득한 개나리를 보면 희망이 샘솟는다. 이제 새 학기를 시작하고 한 달이 지났다. 우리의 미래인 청소년들이 원대한 꿈을 가지고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기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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