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풍원도 우갑 노인의 말뜻을 잘 알고 있었다. 최풍원의 집안이 몰락하게 된 것도, 고향인 도화동에서 쫓겨난 것도 모두 그 때문이었다. 아버지 최선복이 움켜쥐기만 하고 풀어먹일 줄을 몰라 마을사람들의 원성을 샀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의 마음은 강물과도 같았다. 평상시에는 조용하고 평화롭게 흐르다가도 도무지 견딜 수가 없으면 일시에 폭발하여 홍수처럼 휩쓸어버리는 것이 사람들 마음이었다. 인사가 만사였다. 인사를 잘하는 것이 세상만사의 근본이란 것을 최풍원은 아버지 최선복의 비참한 말로를 보며 뼈저리게 느꼈다. 그리고 한 번 상처를 입고 떠나간 사람들의 마음은 쉽사리 얻어질 수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최풍원은 아버지 최선복으로 인해 고통을 받고 떠난 사람들의 마음을 다시 되돌리고 싶었다. 그리고 고향 마을로 돌아가 아버지의 죄를 씻고 예전처럼 사람들과 어울려 살고 싶었다. 장사를 해서 큰돈을 벌어 거부가 되려는 최풍원의 바람이 거기에 있었다.

“어르신, 전 꼭 큰 부자가 되어야합니다! 그래야…….”

최풍원이 그 다음 이야기는 우갑 노인에게 할 수 없었다.

“뜻이 있는데 행하기만 한다면 그리 되지 않겠느냐?”

“그런데, 여쭐 것이 있습니다.”

“무언가?”

“대궐 잔치에 진상한다는 특산품 말씀입니다.”

“진상품이 왜?”

“진상품은 언제까지 올려야 한답니까?”

“천중절 행사에 쓰일 물건들이다.”

“천중절이라면?”

“오월 초닷세, 단옷날이다.”

단오는 설이나 한가위처럼 큰 명절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손에 꼽는 명절 중 하나였다. 이날이 되면 민가에서는 그네뛰기나 씨름을 즐기고, 아낙들은 창포물에 머리를 감기도 했다. 고을과 마을 곳곳에서는 제를 올리며 무병 무탈과 소원성취를 비는 제를 올리기도 했다. 민가에서는 문기둥에 액을 물리치는 부적을 붙이고 수리취를 넣은 단오떡을 해먹었다. 단오절이 되면 봄이 무르익고 여름으로 들어서는 초입이므로 궁중에서는 임금이 신하들에게 더위를 쫓으라며 부채를 나누어주기도 했는데, 이를 단오선이라고 했다. 이번 대궐 행사는 궁중 연회까지 겹쳐 성대하게 치룰 것이라 했다. 그러니 들어가는 물량도 만만치가 않았다. 우갑 노인으로부터 받은 물목을 보면 최풍원이 준비해야하는 청풍 인근의 특산품과 물량도 엄청난 양이었다. 최풍원은 북진난장이 호황을 이뤄 흐뭇하기는 했지만 한편으로는 대궐에 진상할 특산품 걱정에 마냥 즐거워할 수만은 없는 형편이었다.

“단옷날 대궐 행사라면, 충주 상전까지 옮겨야하고, 다시 뱃길로 한양까지 가야하고, 또 대궐에서 음식을 준비해야하니 우리 북진본방에서는 최소한 달포 전에는 모두 거둬들여 갈무리를 끝내놔야겠군요.”

“그래야겠지. 대궐에 쓰일 물품은 최고의 상상품으로 무슨 일이 있어도 기한을 꼭 기한을 맞춰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여러 사람이 치도곤을 당하게 된다. 대신 이번 일만 잘 해내면 앞으로 장사를 하는데 뒷배가 되어줄 벼슬아치가 많이 생길 것이다. 명심하거라!”

우갑 노인이 단단히 일렀다. 

하루하루가 더해갈수록 북진난장은 더더욱 번잡해졌다. 장마당에 펼쳐진 물건들을 구경하러 나오는 장꾼들도 부지기수로 늘어났지만 꾸러미꾸러미 물건을 싸가지고 팔기위해 장으로 나오는 장사꾼들도 하루가 다르게 불어났다. 인근 대장간에서 만든 화로·보습·쇠절구·낫·호미·톱·괭이·못·망치·도끼……등등 쇠 물건을 파는 장사, 죽세품인 대바구니·채반·토시·용수·패랭이·방갓·참빗·얼레빗을 파는 장사, 나무물통·거름통·지게·다식판·떡살·밀판·실판·절굿대·홍두께·방망이를 파는 목물상, 큰독·중간치기·작은독·소주고리·자배기·방구리·동이·시루를 파는 옹기장수, 패랭이·방갓·갓을 파는 모자장수, 조바위·남바위·두리·아얌을 파는 쓰개장수, 미투리·짚새기·노파리·설피를 파는 짚신장수, 징신·격지를 파는 나막신장수, 새끼·멍석·섬·상태기·짚방석장수, 숯장수, 나무장수, 솔장수, 체장수에다 일반 살림집 사내나 아낙들도 집안에 팔만한 물건들은 모두 들고 나왔다.

청풍 인근 사람들은 청풍읍장보다도 북진장에 가면 물건도 풍성하고 싸다고 소문이 퍼졌다. 땡전 한 푼 없어도 북진장에만 가면 품을 팔 수 있고,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북적이는지 흘린 것만 주워 먹어도 요기는 할 수 있다고 너도나도 북진으로 모여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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