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청주예총 부회장

한 삼년 중국에 살다보니 한국은 축복받은 나란 생각이 든다. 여행을 하다보면 ‘이렇게 척박한 곳에서 어떻게 뿌리를 내리고 살 수 있었을까’란 생각도 해 본다. 우리들에겐 중국인들이 시끄럽고 무질서하며, 쓰레기 마구 버리고, 불결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삶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근면하고 강인한 민족이란 생각도 든다. 일하는 걸 보면 쉬지 않고, 불평도 요령도 피울 줄 모르고 일한다. 그런데 또, 시키지 않는 일는 절대로 안한다.

필자는 종종 수업이 없는 주말을 이용해 중국여행사를 통해 중국인들과 함께 여행을 한다. 1박2일 일정으로 관광버스로 황산을 갈 때였다. 옆자리에는 옷을 꽤 잘 차려입은 할머니 둘이 앉아 있었다. 버스가 한창 달리니 할머니 한분이 멀미를 하기 시작하더니 ‘울컥울컥’하며 비닐봉지에 토하는 것이었다. 놀라운 것이 옆에 앉은 할머니의 태도였다. 휴지로 입을 닦아 주는 게 아니라,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더니 슬그머니 일어나 뒷자리로 피해 가 앉는 것이었다. 할 수 없이 필자가 양동이들 받쳐주며 도와주었다. 학교에서도 처음엔 이런 일을 겪고는 당황한 적이 있었다. 하루는 이층 올라가는 계단에 먹다만 컵라면이 쏟아져 있기에 ‘누가 치우나?’ 살펴보았다. 학생이나 교사나 모두 못 본 척 그냥 지난다. 한나절이 지나서야 청소원이 와서 치우는 것이었다.     

특활수업이 있어서 특별교실에 가보니, 부서진 책상과 의자는 나뒹굴고 쓰레기는 난무한데 학생들은 책상에 앉아 있다. 할 수 없이 필자가 혼자 정리하고 있어도 학생들은 그저 쳐다보기만 한다. 한국 학생 같으면 “선생님 우리가 치울게요!”라고 할 것이다. ‘함께 치우자!’며 시키니까 열심히 잘 따라한다. 

매일 새벽에 운동장 뛰다 보면 쓰레기 청소하는 것 눈여겨보았다. 남학생 네 명이 봉지를 들고 쓰레기를 줍는데, 옆에는 안경을 쓴 조그만 여학생이 하나가 ‘이것 주워라, 저것 주워라!’며 지시를 한다. 매일 그 여학생이, 똑같은 학생 네 명을 따라다니며 지시한다. 어른 키보다 덩치가 큰 남학생들은 여학생이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 줍는다. 필자에겐 신기한 ‘광경’이었다. 그 여학생은 학생회 간부였다. 한국의 학교에선 그것이 도저히 불가능할 것이다. 학생회 간부가 그렇게 시키지도 못할뿐더러, 설령 시킨다고 해도 ‘학생회 간부? 제까짓 게 뭔데!’식일 것이다.    

‘중국인들과 다투지 말라’는 말이 있다. 자존심이 무척 강한 민족인 것 같다. 사소한 일에도 화나면 물불은 가리지 않는다. 손해(?)볼 일은 절대로 안한다. 길바닥에 사람이 죽어 나뒹굴어도 돌아보지 않는다. 반면에 공안원(경찰)이나 공무원 등 감독권이 있는 사람이나, 국가기관이나 단체에서 지시하는 사항이라면 무조건 ‘순종’한다. 이렇게 중국 사람들은 순종하며 양순하지만,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판단해 실천하는 ‘역동성’은 부족하다고 느꼈다. 필자는 중국사회가 ‘순종하는 사회!’라고, 한국사회는 에너지가 넘치는 ‘역동하는 사회!’라고 규정하고 싶다. 한 번 쯤 곰곰이 생각해 볼 일이다. ‘순종하는 사회와 역동하는 사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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