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어물도 마찬가지였다. 강을 끼고 있어 청풍에서도 민물 물고기들은 자주 먹을 수 있었지만, 바다가 멀어 바다 것은 소금과 새우젓, 간절이 생선, 마른 미역이 고작이었다. 그것도 간절이 생선이나 마른 미역을 먹는 일은 백성들에게는 아주 특별한 날에나 있는 일이었다. 바다에서 멀리 떨어져 사는 대부분의 산골 사람들은 바다에서 나는 것은 소금과 새우젓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번에 올라온 경강선 중 한 척에는 바다 산물들이 잔뜩 실려 있었다.

새우젓만 해도 그냥 새우젓이 아니었다. 새우젓도 오젓·육젓·장젓·자하젓·추젓·동백하가·세하젓이 있고, 젓갈은 멸치젓·조개젓·어리굴젓·명란젓·창난젓·오징어젓·꼴뚜기젓·곤쟁이젓·황석어젓·준치젓·갈치속젓·토하젓·게젓·어젓·굴젓·까나리젓이 독마다 가득하게 담겨있었다. 생선도 먼 뱃길에 상할까 염려되어 생물은 아니었지만 염장한 조기·꽁치·고등어·병어가 아가리 넓은 동이마다 그득그득하고, 건어물도 생선 말린 것과 해초가 멍석 위에 쌓여있었다. 명태·굴비·오징어·가다랑어·대구·홍어·아귀 같은 건어물과, 미역·다시마·파래 같은 해초 말린 것들이 광주리마다 넘쳐났다. 그저 구경만 해도 뱃속이 든든해질 것 같았다.

임방주들이 있는 가가들마다 쌀들이 수북하게 쌓여있고, 풍기에서 온 천용백 일행도 그 사이에 피륙과 약재 장사를 시작했다. 영월에서 온 성두봉도 북진본방에서 물건을 받아 장사를 시작했다. 한양에서 경강선이 올라와 북진에 닻을 내리고 물건을 풀어놓았다는 소식이 퍼지자 장사꾼들과 장꾼들이 몰려들어 장마당은 순식간에 인파들이 몰려들어 북적거렸다. 청풍 인근을 떠돌던 장돌뱅이들은 물론하고 먼 장을 보러 다니던 장꾼들도 북진에 장이 서고 물건과 사람들이 넘쳐난다는 소문을 듣고 달려와 짐을 풀고 장사를 했다. 사람들이 몰려들자 떡장수도 생겨나고, 모판 멘 엿장수도 나타났다. 배가 들어오고 장이 선다고 하자 품이라도 팔아볼까 하는 일꾼들까지 사방에서 모여들었다. 구휼미를 얻으러 온 사람들에게 술 잔이나 팔아볼까 하고 생겨났던 주막집은 노가 났다. 장사꾼들, 장꾼들, 구경꾼에다 품을 팔고 허기진 배를 채우려고 요기 거리를 찾는 일꾼들까지 몰려들어 종일 북적였다. 그러자 주막집이 더 생겨났고, 북진임방 장순갑이 마누라도 주막집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북진에는 물건도 풍년이고, 장사꾼도 풍년이고, 장꾼도 풍년이었다. 무엇보다도 사람 풍년이었다. 당장 땟거리 걱정을 하는 사람들에게 한양의 저런 물건들이 팔릴까 걱정했던 마음이 기우였다. 아무리 형편이 좋지 않아도 사람 풍년이 지다보니 일거리가 생기고 품을 팔고 물건이 팔리자 돈이 돌았다.

북진본방에는 멀리에서부터 물건을 떼어가려는 장사꾼들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그들 중에는 마소를 두어 마리씩 끌거나 짐꾼 서넛을 거느리고 오는 제법 규모 있는 장사꾼들도 있었다. 이들 중에는 청풍 인근에서는 물론 강원도 태백이나 경상도 안동에서부터 오는 장사꾼들도 있었다. 이들은 청풍 쪽에서는 보기 힘든 그쪽 지방의 특산품을 싣고 와 경상들의 물건들을 바꿔갔다. 최풍원과 장석이만으로는 본방의 일을 감당하기 버거웠다. 각 임방주들이 가가를 보며 함께 도움을 주었지만 그것으로도 힘에 부쳤다. 최풍원은 구휼미를 빌려간 북진과 청풍 인근 임방이 있는 마을 사람들을 불러들여 품을 팔도록 했다. 그들은 한양 물건과 바닷가 산물들을 내주고 본방으로 들어오는 물산들을 물목별로 가르고 갈무리하는 일을 도맡아했다. 또 임방주들이 맡아 하는 가가들을 통해 거둬들인 물품들도 본방으로 옮겨 다듬고 창고에 쌓는 일을 했다. 장마당이 천시가 나니 북진본방도 하루해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정신이 없었다.

“최 대주, 하늘도 도와주어야겠지만, 사람이 만드는 것도 크다네. 그건 사람 노력 여하에 따라 하늘도 움직일 수 있다는 걸세.”

우갑 노인이 장사도 사람이 만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일러주었다.

“어르신, 큰 것을 또 하나 배웠습니다!”

최풍원이 진정으로 존경심을 표했다.

“움켜쥐기만 한다고 부자가 되는 게 아닐세! 세상이 어려울 때는 가진 자가 풀어야 한다네. 그래야 사람들이 편해지지. 그래야 나도 편히 살 수 있는 것이고. 혼자만 살겠다고 움켜지고 있으면 반드시 터지게 되어 있다네.”

“무슨 말씀인지 알고 있으니 꼭 명심하도록 하겠습니다, 어르신!”

“객주 어르신도 최 대주의 그런 마음을 읽고 구휼미도 내주고, 경상들도 이리로 보낸 것일세! 사발 장사꾼이 아니라 큰독이 될 것이라 믿기에 그리 하신 것이 아니겠는가. 진정 큰 장사꾼은 돈을 보는 게 아니라 사람을 보는 법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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