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맡밭나루에서는 한양에서 물길을 따라 짐배들이 올라오면 장사꾼들이 동네 멍석들을 빌려다 강가 모래밭에 깔고 장사를 하던데 여기서도 그렇게 하면 어떨까”

영월에서 온 성두봉이가 의견을 냈다.

“그거 참으로 좋은 생각일세!”

“멍석을 깔면 따로 가가를 세울 필요도 없고, 장사 끝나면 둘둘 말아 한쪽에 세워두었다가 다시 펼쳐 쓰면 되니 북진 형편에도 딱이구만.”

“대주, 우리도 그렇게 해보지!”

각 임방주들도 좋은 생각이라며 찬동을 했다.

“그렇게만 해준다면 우리 피륙들도 그냥 멍석 위에 늘어만 놓으면 되니 터를 마련하느라 따로 품을 들이지 않아도 되고 안성맞춤이겠네!”

풍기에서 온 피륙상 천용백이도 쌍수를 들고 환영했다.

“우리 약상들한테도 멍석을 좀 내주시오!”

천용백이와 같이온 풍기 약상 기풍이도 인삼과 약재들을 풀어놓고 팔겠다며 자리를 달라고 요구했다.

닷 세마다 열리는 향시 장터에는 딱히 정해진 자기 자리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관습처럼 내려오는 자기 자리가 있었다. 장돌뱅이들은 길게는 수십 년 동안 장을 돌며 굳어진 자기 자리를 잡아 그 자리에서 장사를 했다. 그런 불문율을 깨고 뜨내기나 초자들이 자신의 정해진 자리에 자리를 깔면 큰 싸움이 벌어지기도 했다. 장돌뱅이들에게 자리는 농사꾼의 땅이나 마찬가지였다. 그 자리에서 가솔들 목구멍으로 들어가는 양식이 나오는 것이었다. 그런 목숨줄 같은 자리나 땅을 누가 차지하려고 든다면 장사꾼이나 농군이나 앉은자리에서 순순하게 당할 바보는 없었다. 장에서는 그런 자리다툼이 매 장마다 허다하게 벌어졌다. 그만큼 장돌뱅이들에게 자리는 중요했다. 자리만큼 장돌뱅이들이 신경을 곤두세우는 것이 또 있다면 물건을 진열하는 것이었다. 물건을 어떻게 진열해놓느냐에 따라 장꾼들 시선을 빼앗아 물건을 파는데 지대한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었다. 자리가 정해져있기는 했지만, 그 자리는 그냥 맨땅바닥이었다. 장터에 전이나 가가를 가지고 앉은장사를 하는 장꾼들은 가판대가 설치되어있으니 별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매 장을 떠도는 장돌뱅이들은 장이 바뀔 때마다 자기 물건을 펼쳐놓을 뭔가가 필요했다. 맨 땅에 물건을 진열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대부분의 장돌뱅이들은 등짐을 묶은 보를 풀어 바닥에 깔고 옹색하게 물건을 풀어놓기 일쑤였다. 하루장을 마치고 또다시 밤새 걸어 다음 장으로 가야하는 장돌뱅이들에게 등에 진 물건도 천 근 만 근인데 무거운 깔개나 깔판까지 짊어지고 다닐 수는 없었다. 그런데 널찍한 멍석을 장바닥에 깔아준다니 장돌뱅이들로서는 쌍수를 들고 환영하는 것이 당연했다.

난장이 틀어질 북진본방과 임방주들의 가가 주변 장마당에는 집집마다에서 들려 나온 멍석들이 줄줄이 깔리고, 경강선에서 부려진 한양의 온갖 물건들이 진열되기 시작했다. 그릇도, 직물도, 종이도, 돗자리 같은 물건도 이제껏 보아오던 눈에 익은 시골 물건과는 때깔부터 달랐다. 때깔도 때깔이었지만, 생김새도 하나같이 빼어났고, 그 종류는 너무너무 많았다. 그릇만 해도 그랬다. 북진 하류 사기리에서 만드는 거무튀튀하고 투박한 질그릇만 보던 사람들에게 한양에서 내려온 그릇들과 부엌살림은 사람들 눈을 빠지게 하기 충분했다. 조반기·대접·주발·사발·탕기·보시기·종지·바리·옴파리·쟁첩·양푼·반병두리·접시·쟁반·합·신선로·벙거짓골·납소라·쟁개비·번철·노구솥·가마솥·달;쇠·삼바리·석자·국이·주걱·강판·복자·석쇠·절구통·맷돌·쳇다리·체·용수·채반·이남박·조리·고리·광우리·함지·고리…… 등등, 오늘 저녁 당장 먹을 땟거리가 떨어진 아낙이라도 멍석에 진열해놓은 이 물건들을 본다면 빚을 내더라도 사고 싶을 정도로 탐나는 것들이었다. 어디 이뿐인가. 직물도 다홍·도홍·꼭두서니·주홍·연지·분홍·토홍·주황·금향·은행·유록·옥색·취월색·반물·연두·쑥색·취색·야청·보라·자주·고동색을 물들인 화려한 천들이 줄줄이 펼쳐졌다. 게다가 보기도 아까울 정도로 예쁜 노리개들과 용잠·나비잠·화잠·호도잠·죽절 같은 비녀에 참빗·어레빗·월소·음양소에 면경, 화장구까지 나와 있었다. 친정을 떠나 시집올 때 화관에 용잠에 색들인 활옷을 입어본 이래 이날까지 여적지 색동옷은커녕 거친 베옷조차 귀해 덕지덕지 기워 입고 살아온 아낙들로서는 속에서 천불이 날 지경이었지만. 그래도 장에 나와 눈요기만 해도 잠시 고달픈 살림살이를 잊을 수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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