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주, 나는 지금 바로 청풍읍성으로 건너가 북진에 큰배가 들어왔다고 소문내러 가겠습니다요!”

“왜?”

박왕발이가 최풍원의 물음에는 답도 없이 나루터에 모여 있는 사람들 틈을 뚫고 나룻배 쪽으로 바쁘게 사라졌다.

“내가 그리하라고 시켰다.”

“어르신이요?”

“경강선에 실린 짐들을 부리려면 담꾼들이 부지기로 필요치 않겠느냐?”

“저기 짐을 몽땅 북진에 풀어놓는단 말씀이셔요?”

“그렇다. 저 물건들을 일단 북진임방에 모두 입고시킬 것이다!”

“지금 형편에 우리 본방에서 어떻게 저 많은 물건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물품 대금 때문에 그러느냐?”

우갑 노인이 최풍원의 속내를 알아차리고 물었다.

“우선은 그게 문제 아니겠습니까?”

“저런 많은 물건을 누가 돈으로 거래를 한단 말이냐?”

“그럼 무엇으로 합니까?”

“신용으로 하지.”

“제가 경상들과 무슨 거래가 있다고, 저들이 저를 믿고 물건을 맡기겠습니까?”

“당연하지! 경상들이 뭘 믿고 네게 저런 물건을 맡기겠느냐? 윤 객주 어르신이 저들과 약조를 했다.”

“윤 객주 어른께서요?”

“그렇다. 윤 객주 어르신이 어험을 써주고 네게 위탁판매를 맡기신 것이다.”

“이래저래 송구할 뿐입니다요!”

최풍원은 매번 신세만 지는 까닭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리 생각할 것은 없다!”

“그건 무슨 말씀이셔요?”

“남의 것을 얻는데, 세상에 거저가 어디 있겠느냐? 남의 것을 얻었으면 그만한 보답을 해야지.”

“제가 뭘 어떻게 해야 하지요?”

“이 물목을 보고, 이 물산들을 구해 충주 상전으로 입고하도록 하거라!”

우갑 노인이 물목이 적힌 문서를 내놓았다.

“아, 지난번에 객주 어르신이 말씀하시던 대궐 잔치에 쓰일 물목들이군요?”

최풍원이 문서에 적힌 물목들을 살펴보더니 말했다.

지난 번 구휼미를 얻으러 충주에 갔을 때 한양을 다녀온 윤 객주가 언지를 주었던 일이었다. 곧 대궐에서 큰 잔치가 벌어지는데, 윤 객주가 충주 인근의 특산품을 공납하기로 했다는 이야기였다 그때 최풍원에게도 청풍 인근에서 나는 특산품을 책임져달라고 부탁을 받았었다. 그 물목을 가지고 우갑 노인이 직접 북진에 온 것이었다. 그만큼 이번 대궐잔치에 쓰일 진상품이 중요하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했다.

“특산품들을 구하려면 많은 사람들의 품과 돈이 필요할 것 아니겠느냐.  그런데 지금 북진본방의 형편으로는 거기 물목에 적힌 특산물을 하나인들 제대로 구할 수 있겠느냐? 객주 어르신이 그걸 알기에 경상들 물건을 팔아 특산품을 구하라고 배려하신 것이다.”

우갑 노인이 충주 윤왕구 객주의 뜻을 전했다.

최풍원으로서는 윤왕구 객주나 우갑 노인을 만난 것이 천우신조였다. 매번 어려운 고비 때마다 비빌 언덕을 마련해주니 최풍원으로서는 이보다 더 큰 하늘이 없었다. 하늘과 신이 별개이겠는가. 고통에 빠진 사람을 구해주고, 사람을 편하게 해주면 그게 하늘이고 신이었다. 사람을 힘들게 만들면 그것이 비록 하늘이라도 이 세상에 존재할 하등의 이유가 없었다. 그것은 끌어내리는 것이 마땅히 세상을 이롭게 하는 상책이었다.

아무리 혹독한 겨울이라도 그 속에는 봄이 들어있는 법이었다. 강 건너로부터 불어오는 바람 속에는 아릿했던 겨울은 사라지고 솜 같은 부드러운 기운이 실려 있었다. 북진나루 물가에 줄지어 서있는 나무들의 가지들마다 어느새 푸릇한 새봄이 보였다. 북진에 날이 밝자 나루터에는 난리법석이 벌어졌다. 북진나루 포구에는 마치 봄꽃이 핀 것처럼 점점이 거룻배들이 떠있었다. 북진 인근의 도화·평등·읍리·황석·계산·방흥에서 거룻배들이 나루에 모여들었다. 포구 한가운데 떠있는 경강선의 물건들을 강가 땅으로 옮기기 위해서였다. 그뿐 아니라 강가 육지에도 사방에서 모인 사람들이 왁자하게 떼를 지어있었다. 배에서 부려진 물건을 본방으로 옮길 사람들이었다.

“사공들은 김 객주가 맡아 단도리를 해주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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