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가

새벽을 가르며 시골 밭으로 달려간다. 어둠을 헤치고 솟구치는 태양을 향해 달려간다. 새벽에 내린 이슬을 머금고 반겨주는 밭에 도착하면 어둠이 뒷걸음치고 사라진다. 며칠 만에 다시 찾아온 밭에는 잡초들로 무성하다. 심어 가꾼 작물들은 잡초에 가려 보이질 않는다. 고개 길게 빼고 작물위에서 이슬을 받아먹고 잡초들만 자란다.

내 경우도 그랬다. 결국 시골 땅 전체를 겁 없이 손대기 시작했다. 각종 채소를 종류별로 다 심고 몸에 이롭다는 약초도 구해서 심었다. 날이 가물면 물을 주고 비가 많이 내리면 배수로도 정비했다. 그러다보면 밭고랑에 잡초가 뿌리가 내리기 시작하고 금세자란 잡초는 작물을 덮어버린다. 뽑아도 줄지 않고 날은 덥고 흘린 땀에 옷이 축축이 젖어 금세 지쳐버린다. 지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온다.

청주에서 영동까지 먼 길을 오고가며 일을 하다 보니 농작물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고 잡초 관리도 안 된다. 힘들게 일하고 집에 오면 온몸이 나른하여 씻고 곧 잠이 든다. 그런 날은 꿈속에서도 풀을 맨다. 귀농은 하지만 귀촌은 싫다. 오고가기 힘은 들지만 아예 시골로 이주를 하는 건 싫다. 농사일 외에 다른 문화 혜택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계속 일만 하고 지낼 수는 없다. 벌레와도 싸워야하고 짜증나고 심심하다. 영화관람, 대형마트 쇼핑, 친구들과의 소통, 계모임 후 식사와 노래방, 찻집 등 아무것도 누릴 수가 없기 때문에 귀촌을 할 생각은 전혀 없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농막 설치였다. 일을 하다 쉴 공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간단히 식사도 준비해서 먹을 수 있고 간혹 늦게까지 일을 해야 할 때는 잠도 자고 다음날 새벽에 작업하고 하니 능률이 배가된다. 쉽게 생각하고 시작한 농사가 이렇듯 어렵고 힘들다. 그래도 수확할 때는 보람을 느낀다. 힘들여 일할 땐 아무도 나눠주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수확을 하고나면 여기도 주고 싶고 저기도 주고 싶고 모두 나누어준다. 나누는 것이 기쁨이고 즐거움이다. 농사를 쉽게 생각하고 대들면 안 된다. 철저한 계획과 지식을 갖추고 시작해야 한다. 옛말에 ‘할 것 없으면 농사나 짓자’라고 했다. 무턱대고 준비 없이 시작하면 반드시 후회하게 된다. 잡초와의 싸움에서 이길 자신이 있으면 시작해 봐도 좋을듯하다. 쉽게 생각하고 시작했던 나의 경우도 많은 시행착오를 거쳤고 이제 조금씩 방법을 터득해 나가는 중이다.

농사는 하늘과 주변 환경의 도움 없이는 지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잘 자라다 가뭄피해를 입고 홍수 피해를 입는다. 병충해 방제도 중요하지만 멧돼지 고라니 새들의 피해가 더 크다. 고구마, 수수, 옥수수농사 잘 짓고 하루아침에 먹이가 되어 날아간다. 유해 조수의 피해가 가장 심각하다. 먹이 주었다 고 생각하라 하는데 그러기엔 그간의 들인 공이 너무 아깝다.

이제는 알 것 같다. 밥상에 올린 음식들이 왜 맛이 있는지. 고생하며 노력한 땀의 결실이 차려졌기 때문이라는 것을. 귀농 귀촌 서두르지 말고 철저히 준비하고 시작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얼마 전까지는 부모님께서 나누어 주시던 것들을 당연한 것처럼 가져다 먹기만 했었다. 이제는 우리가 나누어 준다. 비로소 부모님의 힘들고 감사했던 마음을 헤아릴 수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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