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그래서 최풍원과 거래를 터주기 위해 풍기에서 대대로 약상을 한다는 기풍이도 데리고 온 것이 틀림없었다. 최풍원은 잠시 고민에 빠졌다. 저들에게 솔직하게 자신과 북진본방의 실정에 대해 이야기를 할까, 아니면 약상 기풍이의 맛뜩잖음을 일시에 거둬버리기 위해 허장성세로 포장을 할까, 어떻게 해야 할지 도통 감이 잡히지 않았다. 최풍원은 이럴 때가 가장 혼란스러웠다. 때로는 거짓이 득이 될 때도 있었고, 오히려 진실이 해를 미칠 때도 있었다. 득이 되던 해가 되던 결정은 본인의 몫이었지만 언제나 쉽사리 결단을 내리기가 곤혹스러웠다.

최풍원은 자신이 그들을 속이기 위해 부러 그리 한 일이 아니니 굳이 밝힐 일은 없지 않겠느냐는 생각도 들었다. 그냥 두루뭉술 넘어가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했다. 그렇지만 상대가 그렇게 믿고 있다면 그렇게 오해를 사게 만든 자신에게도 일말의 책임이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문제의 핵심은 오해를 하고 하지 않는 그런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북진난장이 성황을 이뤄 여러 사람들에게 두루두루 알릴 수 있는가 하는 문제였다. 그리고 북진본방의 상권을 확보하는 일이었다. 그것이 구휼미를 풀며 난장을 펼치게 된 이유였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든 사방에서 장사꾼들을 북진으로 오게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 급선무였다.

“형님들, 실은 북진에 난장이 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오.”

최풍원이 풍기에서 온 천용백 일행들에게 북진본방과 북진에서 난장을 트게 된 연유와 과정을 솔직하게 풀어놓았다.

“어쩐지…….”

그제야 천용백이가 이해가 간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만 그것은 그쪽 사정이고, 우리는 우리대로 사정이 있으니 무대포로 전을 풀 수는 없는 일 아니겠소?”

약상 기풍이가 최풍원의 바람과는 달리 북진난장에 전 트는 일에 난색을 표했다.

“형님들, 도와주는 셈 치고 며칠만이라도 우리 난장에서 장사를 해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최풍원이 사정을 했다.

“정리는 정리고, 장사라는 것이 뭐가 보여야 전을 펼치던 말든 하는 것 아니오. 그런데 여기 북진난장을 보니 피륙이나 약재가 팔릴 만한 장마당이 아닌 것 같소. 더구나 우리가 지고 온 약재 중에는 아주 귀한 것들이 많은데 이런 한적한 강마을에서 나가겠소? 관아가 있는 저런 큰 고을이라면 몰라도…….”

약상 기풍이가 강 건너 청풍읍성을 가리키며 말했다.

“지금은 이렇지만, 여기 북진도 거기만큼 번창하게 만들 것이오.”

최풍원이 기풍의 말을 듣고 기분이 언짢기는 했지만 내색은 하지 않았다. 풍기에서 온 장사꾼들로서는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당연했기 때문이었다. 당연하다고 생각은 하면서도 서운한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동생, 너무 섭섭해 하지는 말게. 장사라는 것이 하다보면 밑 갈 때도 많지만, 여기처럼 전을 펴기도 전에 뻔한 곳에서 어째 장사를 하겠는가. 더구나 풍기서 예까지는 얼마나 먼 거린가. 그동안 먹고 자고 길바닥에 뿌린 것도 수월찮은데 여기서 되지도 않을 장사에 먹고 자며 또 손해를 볼 수는 없지 않은가?”

천용백이 최풍원의 속내를 들여다보기라도 한 듯 위로를 하며 기풍이와 자신들의 입장을 두둔했다.

“형님들, 이리하면 어떨까요?”

“어떻게?”

“형님들이 여기서 장사를 하는 동안 숙식은 우리 북진본방에서 책임지는 것으로요?”

최풍원이 제안을 했다.

“입만 끄슬르며, 팔리지도 않을 물건을 차려놓고 여기서 허송세월을 하란 말이오? 우리도 한시바삐 이걸 팔아 돈을 만들어 영동으로 가야한단 말이오!”

기풍이가 또 거절 의사를 분명히 했다.

풍기에서 온 천용백 일행들을 잡아놓으려면 저들이 안심할 수 있도록 대가를 제시해야만 했다. 물건에 합당한 돈을 지불하거나 저들이 필요로 하는 물건과 교환해주어야 했다. 그러나 지금 북진본방의 형편은 전혀 그럴만한 여건이 되지 못했다. 북진본방의 각 임방들에게 들어간 물품들도, 고을민들에게 나눠주고 있는 지금의 구휼미도 충주 윤 객주가 배려를 해준 덕분에 일단 얻어온 것들이었다. 지금 북진본방에서 남의 물건들을 사들일 수 있는 여력은 조금도 남아있지 않았다. 최풍원으로서는 방법이 없었다. 참으로 난감한 일이었다.

“그럼 이렇게 하면 어떠시겠소? 일단 예서 장사를 해보고, 안 되면 제가 어험을 하나 써드리겠소이다.”

“우린 당장 돈이 필요한데 그깟 어험이 무슨 소용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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