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번역가

두보(杜甫)는 지금으로부터 1300년 전 당(唐)나라의 시인이다. 어려서 집안이 가난했으나 남달리 글재주가 있었다. 하지만 과거에는 번번이 실패하였다. 서른이 넘어서는 아예 과거를 포기하고 전국을 방랑하며 시를 지으며 살았다. 45살 무렵에 좌습유(左拾遺)라는 낮은 관직에 오르게 되었다. 하지만 이전 재상이 옥에 갇히자 그를 구명하기 위한 상주서를 올리게 됐다. 처세도 모르면서 그저 자신의 글재주만 믿은 것이다. 그 일로 숙종에게 노여움을 사게 되어 화천(華州)으로 좌천되었다.

화천에서는 관청의 폭정으로 인해 백성들이 기아에 허덕이는 광경을 목격하게 되었다. 또 동관으로 오는 도중에 신혼부부가 전란으로 헤어지고, 늙은이가 군대에 끌려가고, 수많은 백성들이 전쟁으로 인해 참상을 당하는 것을 목격하게 되었다. 두보는 이 모든 것을 생생히 기록하여 자신의 시로 남겼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의 시를 시대를 비추는 거울과 같다고 말하는 것이다. 59세 무렵에 천하를 떠돌다가 동정호를 건너는 도중에 배 안에서 병으로 숨을 거두고 말았다.

두보는 자신이 생존했던 시절에는 아무런 명성을 얻지 못했다. 당나라 중기에 이르러 당시 대문호 한유, 백거이 등이 두보를 언급하자 차츰 알려지게 되었다. 이후 송나라에서 왕안석과 소식 등, 그 시대의 대가들이 두보를 칭송함으로 그 명성이 오늘날까지 전해지게 된 것이다.

어느 날 두보가 지금의 쓰촨성(四川省) 동쪽 기주 지역 산골짜기에 유배되어 있을 때였다. 우연치 않게 아는 친구의 아들인 소혜라는 젊은이가 자신이 있는 곳으로 유배되어 온 것이었다. 두보는 아는 사람을 만나게 되어 반가움이 없지 않았으나 소혜는 그렇지 않았다. 너무 젊은 나이라 산골에 매여 사는 것이 답답했고, 또 함부로 도망칠 수 없는 자신이 원망스러워 매일 실의에 찬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두보가 그 모습을 볼 때마다 안타까워 좋은 말을 건네어 그에게 위로를 주고자 했다. 그러나 행여 듣지 않으면 말한 것이 무안할 것을 염려하여 ‘군불견(君不見)’이란 시를 한 수 지어 보냈다.

”자네는 사람이 거들떠보지도 않는 오래 된 연못을 보지 못하였는가. 오래 전 죽어 꺾인 오동나무를 보지 못하였는가. 죽은 오동나무는 명장의 거문고로 새로 태어나고, 오래 된 연못에는 용이 숨어 살기에 제격이라네. 사내대장부의 일이란 관 뚜껑을 덮어야만 비로소 결정되는 것이네. 그런데 자네는 아직 늙지도 않았는데, 어찌 그렇게 늘 실의에 빠져 세상을 원망하며 사는 것이냐.”

개관시정(蓋棺事定)이란 사람의 일이란 관 뚜껑을 덮어야만 확실해진다는 뜻이다.  즉 살아있는 사람은 언제 어떻게 될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으니, 죽은 뒤에야 시비와 선악을 평가할 수 있다는 의미로 쓰이는 말이다. 세상살이란 오늘의 영광이 내일은 불행이 되고, 오늘의 불행이 내일은 영광이 될 수 있는 것이다. 3대째 부자가 하루아침에 빈털터리가 되고, 3대째 가난한 사람이 하루아침에 부자가 되는 수도 있는 것이다. 운명이란 아무도 알 수 없다. 그러니 세상을 선하게 살았다면 죽는 날까지 꿈과 희망을 놓아서는 아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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