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규 홍  서원대학 수학교육과 교수

고려 말 때의 일이다.

어느 날 한 청년이 친구 집을 찾아가는 길에 들판을 지나다가 잠시 쉬게 됐다.

들판에서 한 농부가 두 마리의 소로 몰며 쟁기로 논을 갈고 있는데 그 옆에서 쉬고 있던 청년이 심심해서 농부에게 말을 걸었다.

“노인께서 몰고 있는 소 두 마리 중 어느 소가 일을 더 잘한다고 생각하오?”라고 물었다.

그러자 농부는 답을 하지 않고 그 청년한테 와서 소매를 당겨 소가 보이지 않는 곳에 데리고 간 다음 귀에 대고 속삭이듯 “누렁이가 검둥이보다 더 일을 잘 합니다”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이에 그 청년이 “어느 소가 일을 잘하든 그 말을 하는 게 무슨 큰 비밀이라고 이렇게 귀엣말로 하시오?”라고 묻자 농부가 답하기를 “젊은 선비양반, 모르는 말씀을 마시오. 비록 말 못하는 짐승일지라도 자기를 욕하고 흉을 보는 것을 알고 기분이 상하게 되는 것이 세상의 이치라오”라고 했다.

청빈함과 겸손함 갖춘 명재상

농부의 말에 젊은 청년은 미처 깨닫지 못한 부끄러움에 얼굴이 붉어졌고, 비록 소들이 사람의 말을 알아듣지 못한다 하더라도 흉보는 일은 좋지 않다는 평범하지만 값진 진리를 깨닫게 됐다.

훗날 청년은 비록 농사를 짓는 평범한 농부일지라고 학덕이 높은 선비보다 더 값진 교훈을 준 그 노인에게서 얻은 깨달음으로 후세에 널리 칭송 받는 훌륭한 재상이 됐다.

조선 초 세종대의 명재상으로  알려진 황희 정승의 얘기다.

널리 후세까지 명재상으로 회자되고 있는 황희 정승은 그의 청빈함에서 그렇고, 자신에게는 엄격하되 타인에게는 아량과 따뜻함을 보여주는 포용력에서 그렇고, 학문적 깊이에 결코 자만하지 않는 겸손함에서도 그랬다.

특히 남의 얘기를 귀담아 듣고 이를 자신의 모자람에 보태며 나라 일을 펴는 데 썼다는데서 후세에 명재상으로 널리 회자되고 있는 것이다.

황희 정승 얘기를 화두로 꺼내는 이유는 요즘의 정치판을 보면서 황희 정승 같은 총리감이 왜 요즘에는 나오지 않는가 하는 생각에서이다.

마치 목로술집 술상 앞에서 치고 받는 시정잡배들의 싸움판 같은 요즘의 정치판은, 오히려 예전의 어두웠던 시절의 여유로움만도 못한 편협함과 상대방을 배려하기는커녕 인정하지도 않는 독선과 국민여론을 무서워하지 않는 무지스러움에 닭살이 돋을 판이다.

여권은 무엇이 급해서 매사를 이렇게 여론을 무시하고 밀어붙이는지는 몰라도 국민들은 지난 2년여의 시간동안 여권의 막무가내식 밀어붙이기와 정치권의 정제되지 못한 막말에 짜증과 스트레스만 늘어가고 있다.

지난주에 우연히 국회 대정부 질문 TV 중계 장면에서 작금의 여야 대치정국의 발단이 됐던 국무총리의 야당 폄하 답변 장면을 목격했다.

TV를 보던 그 당시의 순간적인 느낌만으로도 ‘저게 아닌데’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정국은 싸늘하게 식어버린 것이다.

그 후에도 여유와 아량이라고는 터럭만큼도 없는 여권의 편협한 대응은 오히려 국민들의 실망만 키우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과연 이 시대에 우리의 수준에 맞는 정치지도자를 두고 있는가에 대한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정치인 포용과 배려 필요하다

황희 정승이 이런 때에 간절히 떠올려지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이고, 정치인들의 그릇을 생각하게 되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이다.

그들이 앉아 있는 자리가 그들의 능력과 품성에 맞으며 과연 그들은 그 자리에 맞는 그릇인가 라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릇에 비유하여 도량이 좁거나 능력이 맡은 일에 미치지 못하면 사람을 그릇에 비유하여 ‘그릇이 아니다’라고 말하듯, 그릇이 작아서 제 역할을 못하면 그 밥상은 아수라장이 될 것이고, 좋은 재료로 만든 음식도 빛이 나지 않을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비록 말 못하는 짐승일지라도 자기를 욕하고 흉을 보는 것을 눈치 채고 기분이 상하게 되는 것이 세상의 이치임을 알고, 싫어할 말은 축생 앞에서도 삼가려했던 600여년 전의 한 농부의 배려에서 깨달음을 받은 황희 정승의 포용과 배려가 그래서 더 간절하게 생각나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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