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운 역사가 또 한 번 기록됐다. 14일 이명박 전 대통령이 검찰 포토라인에 섰다. 전직 대통령이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청에 불려나와 수백명의 기자와 카메라 앞에서 고개를 숙이는 광경을 지켜보는 국민은 참담하다. 본인도 치욕이겠지만, 국가적으로도 참으로 불행한 역사가 아닐 수 없다.

전직 대통령의 검찰 출두는 이번만이 아니다. 1995년 전두환·노태우, 2009년 노무현,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에 이어 다섯 번째다. 더욱이 박 전 대통령의 지난해 3월 21일 출두 이후 1년도 안된 시점에서 우리 헌정사의 비극을 또 다시 목격하니 국민들의 착잡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이 전 대통령은 100억원대의 뇌물수수를 비롯해 수백억원에 달하는 비자금 조성, 조세포탈, 직권남용, 대통령기록물법 위반 등 무려 20여개에 이르는 혐의를 받고 있다. 이 전 대통령은 혐의를 대부분 부인하고 있다. 지난 1월에는 “정치공작이자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에 대한 정치보복”이라는 성명도 발표했다. 그는 어제 포토라인에서도 정치보복 주장을 강조하듯이 “(전직 대통령의 검찰 조사)역사에서 이번 일로 마지막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 전 대통령에게 걸린 수많은 의혹에 대한 실체적 진실은 수사와 재판을 통해 가려질 것이다. 이 전 대통령은 있는 그대로 투명하게 소명하면서 수사에 협조해야 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책임질 일이 있으면 법에 따라 합당하게 처벌받으면 된다. 그것이 전직 대통령으로서 그나마 지지해준 국민에게 최소한의 도리를 지키는 일이다. 물론 검찰 수사는 철저하고 엄정하게 진행돼야 한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이전 정권을 탈탈 털고, 전직 대통령이 검찰에 소환되는 악순환이 되풀이되고 있다. 제5공화국 출범 이후 검찰 조사를 피한 대통령은 김영삼과 김대중뿐이었지만 이들도 자식과 친인척들이 비리혐의로 사법 처리되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국민이 뽑은 대통령이 존경받기는커녕 재임 중 비리로 잇따라 사법 처리되는 역사는 이제 더 이상 반복돼서는 안된다. 그럼 이 같은 후진적 정치 풍토를 막을 방법은 없는가. 전문가들은 대통령에게 과도하게 집중된 권한이 문제라고 지적하고 있다.

그동안 권력형 비리를 막기 위한 각종 제도가 도입됐지만 별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제도가 형식에 그치기도 했지만 정권을 잡은 세력이 권력에 취해 권한을 마구 휘두른 탓도 크다. 따라서 근본적인 치료를 위해서는 제왕적 대통령제를 손보는 일이 시급하다.

개헌은 더는 미룰 수 없는 중요한 과제다. 국회에서의 진행 상황이 부진하자 문재인 대통령이 정부안을 발의하겠다고 나섰다. 그러나 개헌은 국민 대의기구인 국회에서 주도하는 게 옳다. 지방선거와 개헌 국민투표 동시 실시는 지난 대선 때 여야가 모두 내걸었던 공약이다. 이제와 이런 저런 명분을 내세워 개헌을 지연시키는 것은 꼴불견에 불과하다. 여야는 서둘러 구체적 개헌안을 마련하는 작업에 매달리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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