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오랜 세월 사람들과 함께해온 험준한 고개이다 보니 죽령에는 온갖 이야기들이 줄줄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그중에서도 죽령산성이 있는 용부원리에는 다자구할미의 전설이 전해져오고 있다.

죽령에는 대낮에도 도둑떼들이 들끓어 지나는 행인들을 괴롭혔다. 도둑들에게 물건을 빼앗기는 행인들이 나날이 늘어나자 피해를 입은 백성들 원성이 하늘을 찌를 듯했다. 관아에서도 도둑을 잡기 위해 군졸들을 풀었지만, 도둑들은 수목이 꽉 들어차 울창하고 험한 산세를 이용하여 재빨리 숨어버리므로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도둑들에게 재산을 모두 빼앗겨 살기 힘들게 되었다며 웬 노파가 사또를 찾아와  도둑잡기를 자청하였다. 사또가 도둑 잡을 방법을 물으니 자신이 도둑소굴로 들어가 동태를 살펴서 알려줄 테니 군졸들을 죽령고개 일대에 숨겨두었다가 “다자구야, 다자구야!”하고 소리를 치거든 급히 잡으러 오고, “들자구야, 들자구야.”하면 도둑이 잠들지 않고 있는 것이니 숨어있으라는 것이었다. 그때부터 죽령 깊은 골짜기에서 “다자구야, 들자구야!”라는 노파의 외침이 들려왔다. 이 소리는 두목의 귀에까지 들어갔고, 노파는 산적들에게 잡혀 산채로 끌려갔다.

“뭘 하는 늙은이냐?”

산적 두목이 물었다.

“얼마 전, 내 아들 둘이 이 고개를 넘다 소식이 끊겼는데, 큰아들은 다자구고 작은아들은 들자구이구먼유. 그래서 아들들을 찾아다니고 있는 중이구먼유.”

노파가 대답했다.

결국 노파는 산적들에게 잡혀 그날부터 산채의 부엌일을 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두목의 생일이 되었다. 산적들은 두목의 생일을 맞아 술과 음식을 잔뜩 차려놓고 잔치를 벌였다. 한창 분위기가 무르익었을 즈음 노파가 고함을 질렀다.

“들자구야! 들자구야!”

“뭘 하는 게냐?”

깜짝 놀란 두목이 노파를 잡아먹을 듯 눈을 부라렸다.

“맛난 음식을 보니 아들 생각이 나서 그랬구먼유.”

노파가 얼른 둘러댔다.

주거니 받거니 흥청망청 퍼마신 도둑들은 한 밤이 되자 술에 취해 하나 둘 잠에 빠지기 시작했다. 이윽고 두목의 생일을 맞아 실컷 술을 마신 산채의 도둑들이 모두 곯아떨어지자 노파가 소리쳤다.

“다자구야! 다자구야!”

노파의 신호를 받고 숲속에 숨어있던 군졸들이 일시에 달려 나와 산채를 급습하여 도둑들을 모두 잡아버렸다. 이후부터 죽령 일대를 근거지로 삼아 행인들을 괴롭히던 도둑떼들이 사라졌다고 한다. 그런데 이상한 일은 노파도 어디로 갔는지 자취를 찾을 길이 없었다. 사람들은 노파가 본래 죽령의 산신이었는데 산적들이 하도 행인들을 괴롭히니 이를 응징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노파가 산신이든 아니든 이런 도둑 이야기가 전설로 전해져 내려오는 것을 보면 아주 오래전부터 죽령에는 도둑떼들이 횡횡하고 있었음을 알려주는 것이다. 죽령고개에 도둑들이 많았다는 것은 그만큼 이 고개를 넘어 다니는 사람들이 많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도 그럴 것이 대간의 큰 줄기인 소백산을 중심으로 마주하고 있는 영남과 호서 사람들은 어떤 고난과 위험을 감내하고서라도 죽령고개를 넘어야만 서로 교류할 수 있었다. 경상도 동북쪽의 안동·봉화·영주에서 한양을 오갈 때는 반드시 죽령을 넘어야 했다. 입신출세를 꿈꾸고 과거를 보러가는 선비들도, 각 마을에서 나는 온갖 물산들을 이 고장 저 고장으로 나르는 장사꾼들도, 이 고개에서 저 고개 너머로 갖가지 사연들을 전하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사시장철 넘나들던 고개가 바로 죽령고개였다. 사람의 왕래가 잦은 길목에는 자연스럽게 작은 장도 생겨 거래가 이뤄지고, 길손들을 위한 주막집과 장사꾼들의 마방도 생겨났다. 이렇게 노다지 사람들의 왕래가 잦은 곳이니 당연히 도둑들도 꼬이기 마련이었다.

그런데 요즘 도둑들은 다자구 할멈 시절의 도둑과 사뭇 달랐다. 이전의 도둑들은 으슥한 곳에 숨어있다 지나가는 행인들의 물건만 빼앗고는 사라져버렸었다. 그런데 지금 도둑들은 남의 물건을 빼앗는 것은 물론하고 목숨까지도 위협했다. 그만큼 사람들의 심성이나 삶이 살벌해졌다는 이야기였다. 본디 날 때부터 도둑으로 난 놈은 없겠지만, 요즘 산속으로 들어가 화적떼가 된 사람들은 대부분 우리 주변에 살던 이웃들이었다. 그들이 화적떼가 된 것은 여차저차한 이유로 마을에 살 수 없어 도망을 친 사람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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