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열 칼럼]조선시대의 성풍속범 처벌
[이세열 칼럼]조선시대의 성풍속범 처벌
  • 충청매일
  • 승인 2018.03.13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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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지디제라티 연구소장

현재 우리나라를 강타하고 있는 ‘미투(Me Too·나도 고발한다)운동’이 다양한 형태로 번져 앙시앙 레짐(Ancient Regime:구체제) 종식(終熄)의 출발점을 시사(示唆)하고 있다. 그러나 이처럼  활화산처럼 타오르는 운동이 자칫 여자를 멀리하는 펜스룰(Pence rule)은 물론 사회 전체를 멘붕(men崩:정신이 허물어진 상황)으로 몰아넣어 본연의 목적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어느 사회나 남녀가 같이 사는 공간에서 성에 대한 인식은 본성(本性)이라 도인(道人)과 같이 삼가지 않으면 절제가 쉽지 않다. 오늘날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특히 지도자적 위치에 있는 분들에게 성범죄가 많은 것은 편향된 성인식의 도덕 불감증에서 비롯된다. 이는 인간으로서 사회적 윤리가 서 있지 않고 눈 감아 주는 관행으로 보았다는 것은 커다란 문제이다.

조선시대는 유교의 예를 중시해 성풍속범들에게 ‘대명률’을 적용해 강력하게 다스렸는데, 오늘날 여성에 의한 ‘미투’운동의 사례도 있다.

‘대명률’에 따르면, 여성들에 대한 강간범들은 사형에 처해졌으며, 더욱이 12세 이하의 소녀를 겁간(劫姦)한 범인은 교수형이나 참수형의 중벌에 처했다. 강간 미수범들은 장형 100대와 함께 3천리(약 1만2천km) 밖으로 유배형을 내렸다. 강도강간과 근친 강간의 경우 참수형에 처했다. 물론 예외로 신분이 높은 양반들의 경우 감형을 받는 경우가 있었지만 관노(官奴)로 신분격하를 시켜 비록 중형은 면했지만 신분사회에서 그야말로 매장을 당한 격이었다.

공직에 있는 관리들이 창녀와 잠자리를 같이 할 경우 장형 60대에 처했다. 남녀유별(男女有別)의 유교적 관념이 강한 조선시대에는 여성이 신분에 관계없이 정조(貞操)를 지키려는 과정에서 강간범에게 상해를 입힌 경우 오늘날처럼 정당방위를 인정해 무죄 방면하는 등 여성을 적극적으로 보호했다.

조선시대는 봉건 신분제도임에도 지배층에는 더욱 엄격한 처신을 요구하여 국가의 유교이념을 실천하려 했다. 특히 관리가 상민은 물론 사족(士族)의 여성에 대해 성범죄를 저질렀을 경우 가중처벌을 하여 공직기강을 바로 잡았다. 이처럼 조선시대의 성범죄 관련법은 범죄의 결과 뿐만 아니라 그 동기도 엄하게 다스려 사전에 범죄를 예방하는 효과를 거두었다.   

요즈음 ‘나도 당했다’의 가해자들이 법망을 빠져 나가려고 주장하는 합의에 의한 성관계 즉, 화간(和姦)의 경우에도 조선의 법 남녀가 같이 벌을 받았다. 형벌은 남자는 장80대이고, 특히 여성은 남편이 있으면 90대로 가중됐다. 특히 여성을 꾀어서 간통한 조간은 합의에 의한 성범죄다 더 엄중한 장100대에 처해졌다.

이와 같이 조선시대가 강간범을 사형으로 다스린 것은 여성의 정조를 목숨처럼 소중한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성범죄는 무조건 막고 규제한다고 해법이 될 수도 없지만, 봇물처럼 터지는 ‘미투’운동은 분명히 우리 사회의 일그러진 단면을 보여주고 있어 강력한 법으로 처벌함은 물론 유교질서(儒敎秩序)의 회복과 인권의식이 향상돼야 한다. 그러나 이 운동이 자칫 성별 대립과 극단적 부작용을 배제할 수 없어 ‘미투’ 운동이 재발하지 않도록 개인은 물론 사회 구조 전반 걸쳐 시스템을 보완하고 개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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